그림자가 앞서 걸었다. 그러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가 하면 사라졌다간 다시 그림자가 우뚝 앞서 걸었다. 나는 그 뒤를 묵묵히 걸으며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진한 그림자만큼 선명하게 새기는 걸음을 수도 없이 걷게 되었다. 해 질 녘 밀물 드는 소리가 나는 한적한 바닷가에 가끔 나갔다 오곤 한다. 한때는 거의 매일같이 나가서 걷던 길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 걷는 게 싫어서 나가지 않게 되었다.
어젠 꽤 먼 곳까지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고 벤치에 앉아 멀리 보이는 섬에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드니 바닷가에 오가던 생명체들도 다들 어디론가 옮겨간다. 다들 제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게도 고둥도 모습을 감췄다.
멍하니 섬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서늘한 빛이 심장을 관통하는 듯 푸른 섬들이 저만치 누워서 나를 보고 섬이라 하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에 놓인 다리를 걷어버리면 나도 그대로 온전히 섬이 된다. 바다 건너 또 다른 섬을 그리워하면서 갈 수 없는 섬이 된다.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핑 돌던 눈물이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왔다. 자신에 대한 연민에 휩싸여 그 막막한 길을 되돌아나와 걸어가면서 잠시 소리 내어 울다가 눈물을 훔쳤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울음소리에 나도 놀라 황급히 그 감정을 추슬러 담고 자신을 다독였다.
원래 인생이 이런 것이라고. 혼자 걸어온 길, 계속 혼자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잠시 바람이 스치는 길을 걷고 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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