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인데 저녁 먹고 초저녁부터 피곤하다고 딸이 잠들어버렸다. 중간고사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중학교 3학년 내신성적 산출 때문에 열흘 내에 다시 기말고사를 보게 되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과목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아이가 그냥 잠들어버렸는데 깨우자니 너무 곤하게 자고 있어서 내버려 두었다.
금요일 저녁마다 보는 '삼시 세끼'라는 TV 프로그램하기 전에 잠에서 깬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곤 냉장고 뒤져서 망고와 블루베리를 한 접시를 꺼내놓고 먹기 시작하더니 꿈 이야기를 시작한다.
꿈속에서 친한 친구가 터무니없이 비싼 신상품을 주저 없이 사고 돈을 펑펑 쓰는 것을 보고 내 딸은 그렇게 사치스럽게 돈 쓰는 것이 부모님께 미안하지도 않으냐고 타박을 했단다. 그랬더니 꿈에서 그 친구가 너는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냐 자기는 화려하게 이렇게 사는 게 좋다며 내 딸을 놀렸단다.
그러자 딸은 화가 벌컥 나서
"우리 엄마는 혼자서 너무 힘들게 벌어서 나를 이렇게 잘 키워줬는데 어떻게 내가 함부로 돈 쓰고 너처럼 살 수 있겠니? 우리 집 그렇게 좋진 않지만 집 안에 있는 물건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엄마가 다 벌어서 샀고, 정말 쉬어야 할 때 쉬지도 못하고 일하면서 나를 이렇게 키웠는데 그럼 안 되잖아!"
그러면서 친구랑 옥신각신하며 큰 소리를 내며 싸웠다고 한다. 그리곤 감정이 북받쳐서 꿈에서 울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깼다며 말을 하다가 멈추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정말 꿈속에서 그런 생각이 절실했던 모양인지 꿈에서 깼는데도 그 생각에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의자에 앉아 울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 딸을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아이가 그래도 그치지 않고 계속 서럽게 운다. 나도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렇게 내 속을 이젠 다 아는구나 싶은 마음에 기쁘기도 하고, 그렇게 속 깊은 아이가 되어야만 했던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너처럼 그렇게 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아주 잘 살 거야~!" 라고 큰소리치며 제 목소리를 내고 말했단다. 꿈속에서 싸운 그 친구는 실제론 그런 성격이 아닌데 어쩐지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당연한 듯 강요하며 함부로 행동하는 게 너무 속상하더란다.
집안에 어질러놓은 옷가지 정리하는 것이며 분리수거할 쓰레기 정리를 좀 하라고 했더니 대답만 하고 저녁 내내 잠을 잔 녀석을 좀 혼내고 싶었는데 꿈 이야기를 하며 울어서 달래주고 잔소리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젠 또 TV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노닥거리다 잠들 것이다. 저렇게 제 속은 나름 깊은 생각을 하는 아이라는 걸 진작 알고는 있었지만, 초저녁잠에 꾼 꿈 덕분에 저도 제 생각을 더 확실히 알게 되었고, 나도 한 번 더 아이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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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데 쉬지도 못하고 일을 많이 할 때 머리카락이 뭉텅 빠지고 신경성 질환에 시달리며 몸져누워 있을 땐 숟가락 하나도 씻어주지 않던 아이여서 너무 철이 없나 보다 생각했다. 속은 그렇게 차 있으면서 왜 그렇게 행동은 제멋대로만 했는지 사실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아직은 그러고 싶은 어린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딸의 꿈 이야기를 듣고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는 토요일에도 격주로 어린이집 운영을 하던 때였는데 오전에 갔다가 금세 돌아오는 날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오후에 일할 시간이 되기 전에 남은 시간이 애매하고 비도 부슬부슬 오는 것이 심란하여 우리 동네 바닷가 한 바퀴 드라이브라도 해야지 싶어 아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평소에 운전하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 조금은 내키지 않는 길이었는데 급커브 구간에서 수막현상으로 차가 미끄러져 거의 벼랑 같은 경사길로 차가 구를 뻔했다. 핸들을 꺾어도 그대로 미끄러지는 것에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액셀을 밟았는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차가 180도 돌아서 반대편 높다란 바위벽에 부딪히고서야 차가 섰다.
주행 방향대로 미끄러져 굴렀으면 그날 불귀의 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뒷자리에 있었는데 안전벨트를 하지 않아서 조그만 몸이 뒷자리에서 구르다가 약간의 생채기가 나는 정도의 타박상을 입었다. 나는 속도 붙은 차가 바위벽에 부딪히며 급정거하는 바람에 왼쪽과 전방으로 심하게 부딪혀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왼쪽 머리가 터졌는지 부풀어 오르고 안경은 튀어 나가서 깨졌고 어딘가 핏자국이 보였다. 너무 놀라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선 손가락을 움직여보고 숨을 고른 뒤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이가 놀라서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휴대전화를 간신히 찾아서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더 힘을 쓸 수가 없었음에도 얼결에 내가 얼마나 다친 줄도 모르고 차 밖으로 네발로 기어 나왔다. 차 상태를 확인한 후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견디며 구급대가 올 때까지 놀라서 우는 아이를 두고 운전대 위에 그대로 머리를 얹고선
"엄마 괜찮아....... "를 반복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119 구급대 차를 탔다. 친절한 구급대원들의 도움으로 조금은 안정된 상태로 사고지점에서 상당히 멀리 있었던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동안 내 몸이 불편하니 아이를 곁에 두고 보살펴줄 수도 없고, 나도 내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라 친구네에 전화를 걸었다. 딸을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고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보호자가 있어야 한단다. 내 보호자는 나뿐인데.....
친구네에 다시 전화를 걸어서 친구 남편을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토요일이라서 출근하지 않은 친구의 남편 부축을 받고 보호자 인양 이야기해서 나머지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았다. 입원하라는데 그날 일을 해야 하는 날이어서 목에 깁스하고 팔에 뭔가를 걸고 한의원을 찾아갔다.
머리에 통증이 심해서 여기저기 침을 맞고 머리에 꽂은 침은 통증이 좀 줄어들 때까지 꽂고 있어도 된다길래 머리에 침을 잔뜩 꽂고 '헬 레이저'인가 뭔가 하는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갔다. 그대로 긴장을 놓으면 쓰러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고 당시 놀라서 긴장했던 상태가 지속하는 것 같았다.
그때 엄청난 통증과 충격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온몸 구석구석 금이 간 것 같아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진통제를 한 움큼 털어 넣고 최대한 견딜 수 있는 만큼은 견딘 다음에 잠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몇 시간을 버텼다. 그날은 정말 화가 났다. 잠시 누가 나를 대신해주거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때 며칠만 병원에서 쉴 수 있었더라면 훨씬 후유증도 덜하고 치유도 빨랐을 것이다.
손을 내밀 곳이 없었다. 있었어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끝내 혼자 힘으로 살아남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던 때라서 더 독해져야 한다고 나를 다그쳤다. 한 시도 떼어놓을 수 없던 어린 딸을 종일 품고 돌보며 일하고 잠들었다 깨면 같은 하루를 반복해야 했다. 그날은 피곤하기도 했고, 비 오는 날 조금 우울하기도 해서 정신이 어딘가 빠져있었던 사람처럼 멍하니 생각에 빠진 상태로 운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아이를 굶기게 될까 봐 걱정하던 때를 떠올리며 그저 그 고비만 넘기면 나아지리란 막연한 희망을 방패 삼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고가 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리 가늠하면 세월이 금세 가는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많이 아팠고, 병원도 매일같이 다녀야 했다. 그래도 언젠가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그즈음엔 명의를 빌려주고 사기당한 빚 때문에 우리 집 가전제품엔 온통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진풍경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겪고 있을 때였다. 항상 힘든 일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기는 것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던 해였다. 내가 쓰러지나 그놈의 험한 운명이란 게 넘어지나 두고 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할 만큼 하고 나면 가라앉겠지. 때가 있는 법이니 지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때인가 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내 할 일 하면서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어쨌든..... 혼자여서 몹시 힘들었던 때로 기억나는 순간은 그때가 손에 꼽힌다. 그보다 더한 때도 있었을 텐데 힘든 기억은 그냥 덮고 묻어버려서 다른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이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만 반복해서 했다. 그 사고로 차는 다시 수리해서 쓰지 못할 만큼 망가졌는데 내 몸 어딘가 부러지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그래도 뒷좌석에서 잔뜩 겁먹었던 아이 표정이 잊히지 않아서 그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운전석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흔들며
"엄마, 죽지 마....... "라고 말하며 울던 아이.....
그 트라우마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 사고 난 지점에 갔다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서 풀썩 쓰러져서 발목을 다쳤다. 거짓말처럼 갑자기 누가 떠민 듯이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아이가 다치는 것이고, 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엄마의 부재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의지를 하며 살아와서 다른 모녀보다 좀 더 서로에 대한 애착이 강한 관계다.
서럽게 울던 아이가 웃으며 TV를 보고 있다. 내가 앞으론 너무 힘들어 보이지 않게 사는 모습도 보여줘야겠다. 나름대로 잘해왔는데 그래도 내가 힘들어하던 모습을 아이는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엔 아프면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쉬어버린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몸은 편한데 경제적으로는 불편한 상태가 되어 또 힘들어지기는 하지만 항상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면 몸을 사리는 쪽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돈은 나중에 벌 기회가 또 있으려니 생각한다.
***
혼자 내 삶을 책임지고 아이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울 때면 간혹 누군가 곁에 있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내 마음의 무게를 함께 해주면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나기도 했다. 앞으로도 그런 날은 숱하게 또 오고 갈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부쩍 커버린 딸의 꿈 이야기에 내 마음이 여태 지고 있던 무게가 진공상태에 놓인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참 묘한 기분이다. 같이 사는 가족이 나를 믿고, 인정해주고, 아껴준다는 사실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 말 한마디에, 그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눈물 나게 고맙다.
기운 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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