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10~2019>/<2015>

기다릴 때는 오지 않는다.

by 자 작 나 무 2015. 10. 22.

항상 그렇다. 기다릴 때면 나타나지 않는다. 어딘가 숨어 있다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우릴 공격한다. 어젯밤에 어찌나 많이 뜯겼던지 다리에 성한 곳 없을 정도로 벌겋게 부어올랐다. 오늘은 기필코 이 괘씸한 것들을 잡은 뒤에 자겠다고 아직 버티고 있다.

 

어제도 귓가에 앵앵거리는 게 너무 신경 쓰여서 불을 껐다가 켜고 전기 라켓 지참하고 기다렸건만 거짓말처럼 사라져선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곤 밤새 나를 심하게 여기저기 뜯었다.

 

며칠 내내 일찍 잠들지 못하고 낮에도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가 없어서 컨디션이 많이 나빠졌다. 급기야 잇몸에 염증까지 생겨서 오늘은 오랜만에 치과에도 다녀왔다. 의사 선생님이 차트를 보더니 3년 전에 검진받으러 온 다음엔 처음이라며 3년이나 지났는데 엊그제 다녀간 것 같다 하셨다. 

 

그 선생님도 이젠 많이 늙으셨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지만 술 담배 많이 하시는 분이라 노화가 더 빠른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짜릿하게 잇몸에 마취주사를 맞았다. 전에는 피곤하면 생겼다 가라앉는다고 그냥 가라 하시더니 이번엔 갑자기 주사를 두 방 놓으셨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데 이런~~ 갑자기 놀라서 힘이 들어가서 한쪽 손에 잡고 있던 안경을 부술 뻔했다. 잇몸 한 군데 염증 외엔 치아관리가 굉장히 잘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무서운 치과에 다녀왔으니 아침 점심 거른 내게 맛있는 걸 사줘야겠어서 그 골목 어딘가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서 물회를 시켜먹었다. 시원한 맛이 입안에 반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마취가 덜 풀렸다.

 

다시 모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일기도 썼건만 내가 기다리고 있는걸 아는지 더 이상 비행을 하지 않는다. 

 

인연도 기다리고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다가 방심한 순간에 내 주변을 서성이다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조만간에 가을이라 잠시 내밀었던 마음을 접어 넣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그땐 누가 나를 찾거나 그리워해도 돌아봐지지 않는다.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만나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역시나..... 라고 생각하고 접었던 레이더를 혹시나..... 하고 펴놨다. 내 주파수와 맞지 않는 상대는 그냥 지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만나질 수도 있다는 약간의 기대를 걸고 오늘부터 목을 빼고 둘러볼 참이다. 아무도 찾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좀 더 머물 수 있으니 나쁠 건 없다.

'흐르는 섬 <2010~2019> >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 27일  (0) 2015.10.27
10월 22일  (0) 2015.10.22
싱싱하고 저렴한 해물들  (0) 2015.10.18
딸의 초저녁 꿈  (0) 2015.10.17
답답하다  (0) 201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