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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10월 22일

by 자 작 나 무 2015. 10. 22.

오후에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데 커피 담긴 잔에 입술 댔던 자리에 핏자국이 보였다. 뭔지 모르게 이상해서 손을 대보니 뭔가 축축하다. 본능적으로 티슈를 입술 안쪽에 갖다 댔다. 금세 티슈가 벌겋게 물이 든다.

 

여름에 차가운 아이스바를 입에 댔다가 입술과 붙어서 박피 되는 것과 비슷하게 입안 피부가 순간 벗겨진 모양이다. 책상에 티슈가 한참 쌓여도 지혈이 되지 않아 당황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약국에 갔다. 약국에 간 것만으로도 좀 안심이 됐다.

 

연고를 사서 가방에 넣고 약국 근처에 있던 마트에 갔다. 이미 외출했으니 뭔가 사와야 할 것 같았다. 어제 마음뜨락 님의 버섯고추장찌개 사진이 떠올랐다. 시장바구니에 버섯 세 가지를 담고, 호박도 샀다.

 

해물 판매대에 가니 생새우를 판다. 갑자기 버섯고추장찌개가 해물 버섯찌개로 바뀌어버렸다. 새우만 넣으면 심심하니까 봉지에 담긴 바지락도 샀다. 두부까지 담아서 제법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안에 피부가 벗겨지지 않았으면 나가지 않았을 텐데 덕분에 당황하긴 했지만, 연고 사다 바르고 저녁거리도 사 오게 되었다.

 

멸치육수를 진하게 우려내고 해물과 버섯, 무, 호박, 풋고추, 두부까지 넣고 된장국을 한 냄비 그득 끓였다. 딸이 버섯은 왜 그리 많이 넣었냐고 묻는다. 원래 버섯찌개 하려다가 갑자기 메뉴가 바뀌는 바람에 머릿속에서 혼선이 생겨서 두 가지 결합한 탓이라 설명을 해줬건만 해물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버섯 된장국 같다며 툴툴거린다.

 

그런데 새우를 건져서 까먹어보더니 불만이 사라졌다. 지난번에 샀던 새우보다 더 알이 통통한 게 너무 맛이 좋다는 것이다. 어제 물회 먹은 집에서 맛있게 먹은 부추 계란말이도 했다. 부추 향이 진하게 나도록 듬뿍 넣은 부추가 입맛을 돋운다.

 

이틀 정도 잇몸 아파서 강제 다이어트로 1kg 빠진 것이 내일쯤은 2kg 추가되는 결과를 낳을 것 같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나니 마음이 어쩐지 잔잔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몰입감과 만들어진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스트레스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먹고 나면 대체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저녁 식사를 함께할 가족 한 명만 더 있어도 훨씬 더 많은 음식을 다양하게 준비해서 같이 먹을 수 있을 텐데 여전히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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