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10~2019>/<2016>

1월 15일

by 자 작 나 무 2016. 1. 15.

1월달 내내 주중에 딸이 집을 비우면 자유의 몸이 된다고 그토록 좋아했건만, 주중에 주어지는 자유는 오히려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춥다는 이유로 일절 밖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5일 중 3일은 오전에 일을 해야 하니 딱히 시간이 길게 나서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 긴 시간을 어찌 보내냐 하는 것이 고민거리가 되었다.


물론 이 정도면 행복한 고민이다. 여느 방학 때처럼 삼시 세끼 메뉴 바꿔가며 밥차려주지 않아도 되니까 그것만 해도 한결 몸은 편하다. 월요일 아침 일찍 딸이 기숙사로 떠나고 공부하러 오는 애들도 아침에 왔다가 점심 때 되면 가고 종일 혼자 남겨진다. 수요일 아침이 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혼자 뭘하고 놀았는지도 모르겠는데 시간은 어떻든 금세 흘러가버린다. 또 수요일 오전에 두어 시간 열심히 일하고 나면 금요일 아침이 될 때까지 침묵 속에 남겨진다.


익숙해진다. 점점..... 목요일 저녁에만 갑자기 몸살이라도 난 듯 미열이 나더니 잠이 잘 오지 않아 뒤척거린 것 외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언제 아이가 돌아올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인생도 언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고 맞이한다면 어쩌면 많은 것에 담담해질지도 모른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덜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으랴.



일주일 동안 집 밖에 나간 기억이 거의 없다. 지난 주말에 꼬막무침 만들어 놓은 것을 혼자서 며칠이나 먹었다. 그리곤 어제 카레를 만들어 먹은 것 외엔 요리를 했던가?


꼬막도 추울 때 한철 뿐이니 마트에 나오는 것 보이면 장바구니에 담아오게 된다. 오늘은 두 팩을 샀다. 한 팩에 4천원, 저 팬에 담긴 것이 8천원이다. 시장보다 때론 동네 마트가 싸다. 산지와 멀지 않으니 살아있는 꼬막이 꽤 값이 괜찮다.


응답하라 1988을 보는 동안 딸이랑 오돈도손 삶은 꼬막 껍데기를 까서 알맹이만 얌전하고 모아놓았다. 양념장 만들어서 무치기만 하면 된다. 벌써 몇 번째 해먹지만 아직은 물리지 않는 반찬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꼬막은 껍데기를 한쪽만 벗겨서 조개껍데기 위에 올려진 꼬막에 양념장이 발려있었다. 그렇게 하자면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가서 성가셔서 자주 해먹기 곤란할 것 같아 간단하게 편하게 해서 먹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한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꼬막을 삶아서 해먹었다.




양념된 고기를 볶아서 먹고 싶다던 딸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수육거리를 사왔다. 돼지고기 한 덩이 사다가 푹 삶아서 새우젓 곁들이고 김치랑 먹었다. 삶는 동안 이상하게 누린내가 많이 나는 것 같아 언젠가 마시다 남겨둔 딸기와인을 맥주 대신 부어서 삶았더니 고기에서 감칠 맛이 난다. 저녁 많이 먹고 배불러서 한 점만 먹겠다고 젓가락을 들었다가 도무지 젓가락을 놓을 수가 없어서 두툼하게 썰어 담은 수육 한 접시를 다 먹어치웠다.


4박5일 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식탁을 이런 음식들로 대신하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내일 메뉴는 전복죽, 바지락 칼국수. 누구든 함께 삶을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안정감을 주는지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