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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6>

1월 6일

by 자 작 나 무 2016. 1. 6.

딸 있는 곳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렀다. 평소 같았으면 구석구석 돌면서 눈에 걸리는 해산물 싱싱한 것 더 싸게 파는 곳 찾아내서 바리바리 사들고 나왔을테다. 집에 돌아가면 혼자라는 생각에 어제는 떡만 사들고 왔고, 오늘은 최소한의 것만 샀다.

 

중앙시장엔 젓갈파는 집이 많지만 저 집이 제일 양념맛이 괜찮다. 음식 잘하시던 울 엄니 단골집인데 나도 여기 저기 다녀보니 역시나 저 집 젓갈이 제일 괜찮다. 오늘은 오징어젓갈 한 통을 샀다. 밥맛 없을 때 오징어젓갈 쫑쫑 잘라서 넣고 참기름 좀 넣고 삭삭 비벼먹으면 밥이 절로 넘어간다. 가끔 거기다 새싹이나 계란후라이 하나 곁들이면 다른 반찬은 필요없다.

 

 

회 먹고 싶어하던 딸 생각이 절로 난다. 산낙지를 처음 먹어본 후로 계속 산낙지 타령을 했는데 다시 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동네 맛있는 횟집에서 코스로 나오는 것 중에 산낙지가 있어서 맛본 것 뿐인데 그걸 또 얼마나 맛나게 먹었던지 가끔 산낙지 먹고 싶다며 싱긋 웃곤 한다.

 

혼자라서 사갈 게 없다. 먹고 싶지도 않거니와 먹고 싶다해도 혼자서 뭘 얼마나 사서 먹을까 싶은 생각에 구경만 하고 지나왔다. 두부김치 만들어 먹으려고 시장에서 만든 두부 한 모 사들고 나왔다.

 

물메기 철이다. 통영 사람들은 물메기가 물에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게 아니면 거의 사지 않는다. 숨이 끊어진 곰치들은 따서 말려서 판다.

 

이제 겨우 사흘째인데 오늘 아이와의 짧은 만남, 짧은 대화에서 느낀 불편함 때문이었는지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월요일엔 전화 한 통 없더니 화요일 아침엔 간밤에 추워서 잠을 못잤다며 따뜻한 수면바지도 갖다달라는 문자가 왔다. 걱정이 되어서 어제 옷가지를 더 갖다주고 왔다.

 

오늘은 이불 얇은 거 한겹 더 덮으라고 갖다주러 갔더니 수업이 너무 어려워서 속상하다며 울먹거렸다. 선생님이 아이들 점수대로 차별대우 했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나도 그만 속이 상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 하고 싶어서 두리번 거리다 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장이라도 한 바퀴 돌고나면 괜찮아지려니 했다.

 

집에 돌아오니 여전히 심란해서 그 교육프로그램 모니터링 앱을 열고 게시판에 불만을 그대로 털어놨다. 그걸로 내 딸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무지 그냥 담아둘 수가 없는 말들을 들었으니 할 말은 해야했다. 

 

그걸 써놓고 혼자 끙끙거리다 또 잠들어버렸다. 잠들었다 깨니 또 해가 졌다. 오늘은 대충 저녁 떼울까 하고 사온 떡볶이를 먹었는데도 어쩐지 허기가 져서 친구가 일하는 동네 가게에서 수다라도 좀 떨까하고 찾아갔더니 업무로 바쁘다.

 

길건너 혼자 밥먹으러 가끔 가는 추어탕집에 들어갔다. 요즘 짜장면 한 그릇 값인 6천원에 생선구이까지 차려주는 동네밥집이다. 허름해도 점심, 저녁 시간마다 사람들이 줄을 선다. 혼자 가도 싫은 기색없이 자리를 내준다. 오늘은 저녁에 자리가 부족해서 혼자 기다리고 서있었다. 식사하던 부부가 앉은 테이블 옆자리를 내줬다. 겸상하게 해준게 고마워서 싱긋이 웃으며 앉았다.

 

내 밥이 왔는데 먼저 식사하던 분들의 그릇을 밀어야 하는게 미안해서 내 밥은 세로로 차려서 먹었다. 혼자 와서 식사하는 남자분은 있어도 혼자 온 여자는 나 뿐이었다. 고개도 한 번 들지 않고 빨리 먹어치웠다. 뚝배기가 뜨거우니 밥을 덜어놓고 추어탕에 말아놓은 밥을 공기에 건져서 떠먹다보니 금세 다 먹었다.

 

시장에서나 식당에서나 혼자라는 생각에 자꾸만 울컥거려졌다. 식당 앞에 있던 마트에 들어가서 오후에 시장에서 미처 사들고 오지 못한 해물들을 사왔다. 전복죽에 넣을 전복이랑 꼬막도 샀다. 책상 맡에서 먹을 아몬드랑 구워먹을 고구마..... 등등 배가 불러서 음식 생각이 없음에도 팔이 뻐근할 정도로 많은 먹거리를 사들고 왔다.

 

잠시 혼자가 되어 마음이 가라앉으니, 항상 혼자였거나 혹은 가족들과 함께였다가 아이와 떨어져 혼자가 된 분들에 대해 어제 오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도 자꾸만 그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적응하기 힘들었을까..... 얼마나 보고 싶고 마음이 아릴까..... 난 혼자였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근사한 밥상을 차리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런 건 정말 못할 것 같다.

 

다들 주어진 삶에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진다. 그게 그저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에 순응하듯 주어진 삶과 현실에 적절히 타협하며 나름의 삶을 꾸려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가게 되겠지만, 그 속은 얼마나 많은 상처들로 아프고 또 아플까.....

 

내가 누리고 있는 나만의 행복도 결국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 앞에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안게 된 것이지만 때론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욕심이 고개를 치켜들 때는 마냥 괴롭다. 투덜거리며 그냥 지나가버리곤 하지만 허전한 마음이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은 열망은 아직 남아있다.

 

이제 블로그가 아닌 싱글카페에서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이 볼지도 모르는 곳에서 잠시 행복한 순간, 나도 그냥 견딜만 하다고 행복하다고 웃는 모습 보이는 게 어쩌면 미안할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일이 없어서 온전히 쉬는 날이다. 아침에 그나마 일 때문에 깨는 일도 없을테니 종일 잠만 자게 될지 어딘가 다녀오게 될지 지금 이 얕은 의지론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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