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몸을 사리고 사람을 피하게 되는 걸까?
찬찬히 생각해서 그 이유에 스스로 답을 하려니 가슴부터 답답해진다. 그냥 이유를 모르는 척하며 이대로 살아도 그렇게 불편할 것도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돌리고 싶어 진다.
오늘은 딸내미 다니는 학교 졸업식이라 딸이 일찍 학교에서 돌아왔다. 어젯밤에 목과 귀가 아프다기에 혼자 병원에 보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사소한 진료를 받으러 갈 때 조차도 항상 내가 따라다녔다. 의사 선생님이 이젠 혼자 와도 되는데 엄마를 대동하고 온다고 놀리기까지 했다. 그 이비인후과에 오늘 처음으로 혼자 진료받고 오라고 보냈다.
별 문제없이 잘 다녀오고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세 팩에 오천 원 하는 떡도 사 왔다. 그리곤 집 근처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내가 읽을 책까지 주문받아서 갔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더라도 몇 줄이라도, 몇 장이라도 읽다 보면 그동안 게으르게 책과는 멀어진 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 딸을 도서관에 자주 보낸다.
나는 일 때문에 학생을 만날 때 외엔 거의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방 안에서 지내고 있다. 동네 마트에 가끔 나가는 게 전부다.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간결해진 삶에 누군가 끼어들어서 불편해지는 것이 싫다. 내게 정신적인 여유가 좀 더 생긴다면 누군가 끼어드는 게 아니라 함께 하여 풍요로워진다는 표현을 쓸 것인데 지금의 나는 아직 마음이 무겁고 그 누구의 마음의 짐을 함께 해 줄 여력이 없는 상태다.
오로지 내 딸 건사하는 게 내 삶의 전부이다. 다른 문제는 조금만 틀어져도 금세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 때는 잔소리를 해주던 어머니가 그립기도 했지만, 혼자 오랜 시간을 웅크리고 지내다 보니 이젠 아무것도 그립지 않다.
내가 가장 여유롭게 사람들을 대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보던 때가 언제였나 되짚어보면 20대 중반, 집안이 평안하고 부모님과 사이가 좋을 때였다. 그때 쓴 글들은 편안하고 잔잔하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만의 언어로 편안하게 잘 쓰던 때였다. 모든 게 풍요롭진 않았어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품어주고 인정해줄 때 비로소 나도 나를 편안하게 하며 잘 지냈던 것이다.
그때 가족이었던 사람들과 내가 등을 돌리고 산다 하더라도 혈연과 천륜이 끊어질 리 없겠지만, 십수 년 서로 오가는 일 없이 오래 동떨어진 생활을 하다 보니 때론 가까운 이웃보다 못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아픈 느낌이 싫어서 대체로 그냥 잊고 산다.
딸에게 좀 더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나름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다. 가족이나 일가 친척간의 교류 없이도 삶에 큰 균열은 없으니 이대로 살아볼 참이다. 감정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어려운 관계를 지속하며 속이 바짝바짝 타는 심정으로 먹어도 살이 오르지 않던 그때의 삶으로 나를 되돌려놓고 싶지 않다. 내가 워낙 예민한 사람인 탓이다.
함께 사는 딸은 나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상대를 나 또한 힘들게 하는 성격은 아닌 게 확실하다. 딸이 도서관에 간 사이 몇 줄 푸념을 쓴다는 게 길어졌다. 오늘은 방 정리를 하고 미적분 2 공부를 해야 하는 날이다.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 배우지 않았던 것도 공부해서 주어진 문제는 겨우 해결하고 있다. 일거리가 늘지 않아서 계속 위태위태하단 생각에 계속 흔들리고 있다.
어딘가 도망가서 돌아다닐 정도의 체력도 회복되지 않아 고심하다가 오늘은 비수기 제주도 항공권 검색을 해봤다. 썩 내키지 않아서 다른 곳에 눈을 돌려보려니 여권이 이미 만료되었다. 봄이 되어 걷기 좋은 날이 올 때까지 좀 더 웅크리고 지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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