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면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에 있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이 넘도록 그 집에서 살았다. 도로확장 공사 예정지로 십수 년간 개증축도 이사도 못하고 낡은 집에 묶여서 살다가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야 처음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은 이후에 헐리고 해안도로에 일부 편입되고 나머지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태어나서 자라던 집은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은 그 바다가 건너다 보이는 반대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대문을 열면 보이던 자잘한 섬들이며 밤이면 바닷가에 어룽이던 불빛이며 잔잔하게 물결지는바다를 보면서 유난히 많은 생각에 젖어살았다.
4남매 중 둘째이며 딸인 내 이름이 어머니의 이름 앞에 붙어서 '아무개 엄마'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았던 걸로 봐서 장남인 오빠의 이름보다 내 이름이 앞에 붙게 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내 생활은 거의 완벽했다. 특별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둘째의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부모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본능이 나를 그렇게 열심히 살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늘 1등 해도 칭찬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좋아하셔도 그에 응당한 아이가 바라는 칭찬을 받을 수 없었던 내 어린 시절의 갈증은 애정결핍으로 느껴질 정도로 절박한 갈애에 시달리게 한 원인 중 하나였다. 부모자식 간에 그 흔한 포옹 한번이 힘들었던 성장기를 보냈다.
그게 싫어서 내 딸과는 자주 포옹하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엉덩이도 토닥거려준다. 그걸로 그 갈증을 충분히채우긴 어려운 모양이다. 가끔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에 내 딸처럼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패배감, 박탈감 같은 묘한 어둡고 서글픈 감정들이 치밀어 오르곤 한다. 그래서 한 때는 넉넉하게 기댈 수 있는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그 사랑을 대신 받기를 원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녀 간의 연애가 그런 것이던가. 나이 차와는 무관하게 내게 더 치대고 기대어 불편하고 감당할 것 많은 관계가 되기 일쑤였다.
물론 연애를 했다 할 만큼 몇 달씩 이성을 사귀어 본 경험도 거의 없다. 달랑 한 달, 혹은 멀어서 만나기 힘들어 두어 달 탐색기를 가지던 중에도 역시 내가 이성에게 바라는 안도감과 안정감 보다는 피로감이 더 심해서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거나 한 단계 발전시키는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시켜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부모자식간의 사랑처럼 주는 것 없이도 한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관계는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내가 주지도 못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받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나는 부모님께 사랑받기 위해 한 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사랑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내게 필요한 사랑은 받지 못했다. 이 생에서 이런 관계를 다시 재현하여 내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내 자식을 낳아 충분히 사랑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그 과업을 수행 중이다.
내일 종업식을 앞두고 오늘은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정규수업만 마치고 일찍 돌아올 딸을 기다리며, 내일아침엔 어떤 맛있는 메뉴를 해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딸은 항상 전날 저녁에 다음날 아침에 뭘 먹을수 있는지 묻는다. 내 딸은 먹는 즐거움에 아직은 너무나 큰 덩치 큰 아이다.
나도 나이를 먹긴 했지만 속엔 아직 부족함 투성이에 어딘가에 투정부리고 떼도 쓰고픈 아이가 다 자라지 못하고 남아있다.
'흐르는 섬 <2010~2019> >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을 책 고르기 (0) | 2017.02.09 |
---|---|
내가 좋아하는 것들 (0) | 2017.02.09 |
2월 8일 (0) | 2017.02.08 |
1월 28일 (0) | 2017.01.28 |
집 앞 카페에서..... (0) | 201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