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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7>

문득 꿈을 꾸고.....

by 자 작 나 무 2017. 10. 9.

 

딸 일곱 살 때,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연휴 동안 아침에 학교 가는 딸 깨우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하여 며칠 늦잠을 잤다. 그 바람에 이런저런 잡다한 꿈을 많이 꿨다. 그중에 한 가지 생각나는 걸 적어본다.  

 

그 꿈속에서 나는 갑자기 몇 달 내로 죽을병에 걸려서 죽을 날을 헤아려야 할 상황이었다. 언제든 닥쳐올 일이라 담담하게 그날을 맞으리라 생각해왔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운 것은 없는지 헤아려봤다. 딱히 애착이 남아 꼭 오래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딱 한 가지 내가 먼저 떠나면 딸이 세상 떠날 때까지 내가 없는 시간의 허전함을 어떻게 감당할지 그게 걱정이 됐다.

 

언제 떠난다는 말 없이 하던 대로 잘해주며 지내야 할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즐거운 시간 같이 보내자 해야 할지 망설였다. 내 딸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 그저 함께 남아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꿈이었다. 그 외엔 뭔가 악착같이 더 해야 할 것이나 부족하니 더 채워야 할 것이라 느껴지는 게 없었다.

 

내가 기대고 있는 이 인연에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고 가는 것 외에 별생각 없이 사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억척스럽게 일해서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뭔가 열렬히 바라는 것도 없다. 내 능력 안 되는 일에 과하게 신경 써서 더 잘하려고, 남에게 억지 도움 되려고 애쓰는 것도 넘치는 일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먼 훗날 딸이 내가 써놓은 일기를 뒤져서 다 읽게 되는 날도 올까. 부모·자식은 전생의 악연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해서 딸 낳고 키우는 동안 내 고집이나 내 생각을 강요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그런 부모 밑에 살아보니 사는 동안도 힘들었고, 떠나온 뒤에도 힘들어서 그 덕분에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저 원하는 대로 살아보게 자기 삶의 과정을 선택할 수 있게 나름 애썼다. 항상 주어진 인연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다 견뎌지고 살아진다. 아직 살아야 할 날들이 반은 더 남았는데 이미 깔딱 고개를 넘어온 사람처럼 먼 산등성이에서 내 삶을 내려다보고 앉았다.

 

어려서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들을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하나도 늙지 않은 것 같은데 몸은 조금씩 늙어가고, 아직은 또 다른 세상의 변화를 목격하며 살아남아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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