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엄청난 미세먼지에 시달리다 한 며칠 시야가 제법 깨끗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이런 맑은 날씨를 누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어제도 오후에 꼭 산에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기운이 딸려서 못 가고 오늘 아침 먹고 느지막히 엉기적거리다 미륵산에 올라갔다.
평일이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여유롭게 걷다 오고 싶었다.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주말에 비하면 다닐만한 정도였다. 산길도 처음엔 붐비다 느적느적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 걷고 사진 찍고 노닥거리다보니 한낮이 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조금 한산해졌다.
오랫동안 이곳에 올라보지 못했다. 그 사이 케이블카 상부 역사에 꽤 많은 구조물들이 새로 생겼다. 바닥을 유리로 깔아 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스카이워크 구간도 두 개 만들어놨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아기자기한 조형물도 곳곳에 배치하고 산야초도 꽤 심어놨다.
정상 아래 그늘진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봉수대 아래 그 자리 주변엔 이 동네 산에서만 자란다는 병꽃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자연 만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새로 나서 벌써 초록이 짙어지고 있는 신선한 나뭇잎들이나 올망졸망 피어난 꽃을 보다보니 절로 웃음이 난다. 참 곱다......
연두빛 잎이랑 꽃을 보고 슬며시 웃다가 거울을 보니 내 얼굴도 오랜만에 맑아보인다. 한동안 마음에 묵은 것들이 가라앉아 꿈쩍도 않고 자신을 긁어대서 참 많이 울었다.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해서 용을 쓰다보니 길가에 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서럽게 울고 또 울다 지치면 어느날 울음이 잦아들고, 또 잊을만 하면 눈물이 났다.
다들 커플이나 삼삼오오 짝을 지어 봄을 즐기러 왔는데 나만 혼자다. 가볍게 쉽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잊었다. 그냥 혼자 길을 걷고 혼자 남겨진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너무나 익숙해져버려서 하나도 외로울 것 같지도 않았는데 밖에 나와서 함께인 사람들을 보니 부럽다.
나는 이런 산빛이 너무 좋다. 신선하고 상큼한 연두빛일 때가 가장 화사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저 초록의 융단 위로 사뿐히 날아내리고 싶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만 맞고도, 하늘에서 내려주는 햇빛만 받고도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 제 색을 내는데 만물의 영장에 속한다는 나는 왜 이렇게 욕심도 많고, 근심도 많아서 제 빛을 내는 게 어려운 걸까......
마음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 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은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
서로 사진 찍어준다고 난리인 사람들 틈에서 멀뚱하니 풍경 사진만 찍다가 나도 그냥 갈 수 없잖아. 타이머 셀카~ 하나, 둘, 셋!
여전히 둥글둥글하다. 카메라가 거짓말쟁이다. 나 이렇게 얼굴 안 커~
산 위에 올라갈 땐 둘이 손 꼭잡고 셀카 찍느라 여념이 없던 젊은 커플과 동석하였는데, 내려올 땐 혼자 널널하게 타고 왔다. 그래서 바깥 풍경도 찍고.....
루지 타는 곳 만드느라 온통 긁어내고 파헤쳐놓은 산도 내려다보게 되었다. 저렇게 곳곳을 면도날로 밀어놓은 것처럼 산을 밀어버린 걸 보고 나니 내 머리숱을 밀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씁쓸하다.
길가에 핀 장미에게 말을 걸어본다. 어찌 지내느냐고, 이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와도 그렇게 예쁘게 피어있어달라고 말을 걸어본다. 산에서 내려와서 장사도행 유람선을 처음으로 타볼까 했는데 유람선 터미널에 가보니 단체손님들이 마침 배 위에서 가는 길에 단체기도를 한단다. 어느 교회에서 단체로 장사도 유람선을 타는 모양이다. 내 첫 장사도 여행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으면 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국내 여행 > 길 위에서<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 (0) | 2018.07.22 |
---|---|
비오는 날 수국 핀 연화도를 걷다 (0) | 2018.07.06 |
아름다운 유월의 함양상림 (0) | 2018.06.15 |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0) | 2018.05.31 |
2018년 새해 해맞이 (0) | 2018.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