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만나러 갈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낯설고 설레는 기분보단 익숙하고 편안한 연인이 있다면 연락 없이 불쑥 오늘 같은 날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찾아가 보면 어떨까...... 혼자 진주로 향하는 길에 이런저런 망상에 빠져본다.
스무 살에 시작된 인연, 어언 30년 이어진 인연이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국수 한 그릇 먹으러 일부러 찾아가는 집이다. 유부초밥, 유부 김밥도 함께 주문해서 국수랑 먹으면 맛있는데 오늘은 혼자여서 국수만 한 그릇 주문했다.
30년 걸음 하는 동안 이 집 국수 맛에 한 번도 실망해본 적이 없다. 깔끔하고 면은 쫄깃하게 삶아내 주신다. 양도 푸짐하다. 호박, 부추, 숙주, 조갯살이 함께 조화로운 맛을 낸다.
어릴 땐 국수를 즐기지 않다가 중학생이 되고서는 국수 맛에 눈을 뜬 딸까지 가세하여 진주에 함께 가면 으레 이 집에 들러서 국수와 유부초밥을 먹는다.
한때 내가 진주에 살 적에 어머니와 함께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이젠 내 딸과 함께 찾아가는 단골집이다. 30년 명맥을 유지해온 작은 분식집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3대에 걸쳐 모녀가 함께 맛있는 국수와 김밥을 즐기며 정담을 나누게 해 준 곳이다.
내 돈 내고 음식을 사 먹지만 3,500원 하는 국숫값에 감사하고, 변하지 않는 맛있는 국물 맛에 감사하고, 늘 쫄깃하게 맛있게 말아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온다.
좁고 허름한 집이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배불리 먹던 뜨끈한 통국수에서 시작해서 요즘은 냉면 대신 이 집에서 냉국수를 즐겨 먹는다. 오늘도 맛있게 한 그릇 먹고 기분 좋게 나왔다. 익숙함은 편안함이요, 오래 간직해온 정이 깊이 밴 따뜻함과 함께 한다.
진주도 통영과 마찬가지로 재래시장이 발달해서 백화점만 들어오면 망해서 나가곤 했다. 그러다 브랜드 백화점이 들어와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서 가끔 쇼핑하러 가는 곳이다. 우리 동네엔 없는 물건이나 직접 보고 사야 하는 물건을 살 때만 주로 들른다.
낡아서 버려야 할 지경이 된 낡은 가방을 대체할 새 핸드백을 하나 사고, 딸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면 옷을 두 벌 샀다. 그리고 수험생에게 필요한 영양제 외 기타 등등.....
새로 단장한 지하상가를 지나서
진주성 주변에 단정하게 조성된 산책길을 잠시 걸었다.
어느 날, 그리 멀지 않은 훗날 내 뒷모습이 저리 쓸쓸해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 늙어가기 싫다.
저녁에 배가 아파서 일찍 집에 와야겠다는 딸이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어폰 끼고 음악 듣다 통영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동안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걱정돼서 전화를 몇 통씩이나 걸었다. 며칠 전에 버스 안에서 흉기로 묻지 마 폭행을 당한 뉴스를 읽은 딸이 그 생각이 나서 갑자기 무서워지더란다.
걸핏하면 혼자인 엄마가 어디 가서 굴러서 다치진 않았을까, 혼자 욕실에서 샤워하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혼자인 내 걱정이 많은 딸이다. 걱정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맛있는 거 사서 같이 먹어야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밤참거리를 샀다. 여기에 망고 푸딩 한 통까지 해치우고 나니 피곤하지만, 기분이 좋다. 사는 게 별 거 아닌데 때론 너무 버겁고, 때론 아무 일도 없이 행복한 날도 있다.
약국에서 새로 사 온 약을 바르고 내 팔에 난 상처 소독을 해주고 압박붕대를 딸이 정성스럽게 감아준다. 당연하다 생각지 않고 내가 받는 관심과 사랑에 이렇게 항상 감사할 수 있다면 누굴 만나도 잘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익숙하고 편안해지기까지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이 바탕이 되어 많은 것을 함께 하고 대화하며 지내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과 행동이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모녀는 행여나 정이 식기라도 할까 봐 눈 마주칠 때마다 서로 안아준다. 잠들었을 때조차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쓰다듬고 뽀뽀해주고 말을 건다. 잠들기 전에도 잊지 않고 꼭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다고 말해준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 만나 함께 살 게 되면 그렇게 하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내 부모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의 표현을 나는 끊임없이 딸에게 건네고 딸은 그 사랑을 받고 자라서 내게도 이젠 조금씩 사랑을 나눠준다. 곧 내 품을 떠날 아이다. 함께여도 이젠 제 인생을 따로 살아내야 할 것이다. 딸이 내 걱정 덜 하게 함께 사랑하며 지낼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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