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유소년 축구팀과 코치가 동굴에서 실종된 지 17일 만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눈물이 났다. 특별히 범인류애적인 사랑이 발동되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기 보단, 그에 앞서 우리의 가슴속에 크나큰 상처로 남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린 이들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도 그랬어야 했는데.....
잠들기 전에 딸이랑 그 사건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초점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젊은 축구 코치의 남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어둡고 먹을 것 없는 동굴 속에 갇혀 있었다면 공포에 짓눌려서 어른들조차도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쓰러지거나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모두 무사하게 돌아온 것에 여러가지 요소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그 코치가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절에 맡겨져 승려 생활을 하는 동안 배운 명상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다듬게 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실재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공포가 자신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현실로 닥친 공포와 고립, 배고픔을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없는 공포를 자처해서 느끼며 공포가 실재하지 않는 현실에 안도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그 고립의 상황에서 마음 다스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코치가 아이들에게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한 것이 대단히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너무 할 말이 많아서 긴 말은 쓰지 않기로 한다. 태국 소년들의 무사 생환 구조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감사한 마음이 이렇게 드는데,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처음 출동한 해경들 중에 누구라도 선창에 붙어 애타게 문을 두드리던 모습을 보고 달려들어 창을 깨고 좀 더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받았을 것인가.
감사를 받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괘씸함 때문에 홧병이 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난 상처가 이런 사건을 대할 때나, 그에 준하는 일들을 접할 때마다 아프고 또 아픈 이런 시간들이 무한 반복될 것이 두렵다.
상처는 언제든 낫기 마련이다. 적절한 치유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다 안 된다 하더니 정권이 바뀌자 건져 올린 세월호. 그 전엔 왜 건지지 않았을까? 4월 16일 그날은 왜 더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하지 못했을까? 아님 하지 않았을까? 풀리지 않은 의문에 책임 있는 누군가는 답해야 한다.
두루뭉실 스리슬쩍 자기들 편의에 맞춰 적당히 날조하고 언론 조작하고 넘어가버리는 건 그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도 도리가 아니고, 아직도 잊지 않고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에 난 상처를 보듬어 마음을 돌리기엔 부족하다.
태국에선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아도 된다는 뉴스가 이렇게 감사하고 가슴 아프고 감동적이라니 한동안은 이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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