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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8>

7월 20일

by 자 작 나 무 2018. 7. 20.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다. 취향이란 게 있다.
커피를 마실 때 블랙으로만 마시는 사람도 있고, 부드러운 크림 넣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입맛대로 자기 취향대로 선택한다. 그건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에 대해 취향을 드러내면 까탈스럽다는 핀잔 섞인 눈초리가 덤으로 날아온다. 까탈스러워서 쉽게 아무나 만나지 못하고 인연을 맺지 못하더라도 그건 내 선택이다. 

 

아는 사람 중에 남성을 볼 때 얼굴형까지 세심한 기준을 가진 사람도 있다. 어떤 친구는 남자는 하관이 두툼하니 턱이 좀 있어야 남자 같아 보인다 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도 이왕에 깎아놓은 것 같은 뾰족 턱보다는 그런 쪽이 낫다는 정도는 생각하게 되었다. 

 

20대에는 나도 그런 유치한 기준이 몇 가지 있었다. '치열이 가지런하고 머리카락은 직모여야 하고 머릿결이 무엇보다 부드러워야 한다.' 이런 기준은 왜 생겼는지 왜 생각해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약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이왕에 치열이 가지런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술, 담배를 많이 해서 입술이 시커멓게 변했거나 치열에 담배 진이 배인 사람들에 대해선 일단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성적 매력이 반감된다. 그건 본능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 전반에 깔려서 나오는 반응일 수 있다.

 

그 외엔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었지만,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외모에 대해 신경 쓰이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이야길 하기 전에 이유도 모르게 끌리는 사람은 그 기준이 아무 쓸모가 없다. 좋으면 눈에 콩깍지 씌어서 다 용서가 된다.

 

나는 지적인 남자를 좋아한다. 입만 살아있는 남자, 책 좀 읽었다고 거들먹거리는 뻔한 남자 말고 평범한 말 한마디를 해도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지성미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목사님 설교하듯 교조적인 글을 남발하는 스타일 말고, 따뜻한 가슴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다.

 

그 외는 대체로 '너무'만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이왕에 잘 생기면 좋고, 이왕에 키도 크면 좋고, 이왕에 어깨도 넓고 가슴도 넓어서 폭 안길 수 있는 사람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것까지 다 바라진 않는다.

 

'너무' 잘생긴 남자는 부담스럽고, '너무' 못생긴 남자도 부담스럽다.  이렇듯 외양은 '너무'만 안 들어가면 OK. '너무' 뚱뚱하거나, '너무' 말랐거나, '너무' 무식해 뵈거나, '너무' 가식적이거나..... 등등.

 

사실 너무 잘 생기고 너무 똑똑하고 너무 잘난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부족한것 투성이인 나를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나처럼 적당히 생기고, 적당히 날씬하고, 적당히 공부도 좀 하고, 적당히 성격도 좋고, 적당한 체격을 가진 무난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과한 욕심일까? 

 

나보다 좀 못하다 싶은 사람을 만나보니 상당히 피곤하더라. 대부분의 생활을 상대의 기준에 맞춰주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람만 좋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너무 나를 낮추고 사람을 만나보니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너무 똑똑한 사람도 피곤하고, 너무 잘생긴 남자도 주변에 여자들이 많아서 피곤하고, 너무 여우같이 센스있는 남자는 그 나름의 고충이 있고, 너무 못생긴 남자를 만나 부모님께 데려갔더니 나중에 돌아서서 어디서 그리 못생긴 놈을 데려왔냐며 당장 헤어지라고 하시더라. 

 

적당하다는 것의 기준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그조차도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성을 보는 기준도 개인의 취향이다. 이런 나에게 '너무' 까다롭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말이 통하고 유대감이 느껴지는 사람에겐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짚신도 제짝이 있다는데 나도 무늬와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짝맞는 짚신이 될 수도 있고, 고무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날도 더운데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란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한참 혈기왕성하던 30대에 어린 딸을 재워놓고 혼자 밤새워 뒤척이며 긴 밤 내내 그 노래를 들었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품에 안고 자장가처럼 그 노래를 들려줬으면 하는 생각에 잠겨 눈물을 줄줄 흘렸던 밤이 떠올랐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어쩌면 그런 바람은 소망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품고 있는 부질없는 이 생각도 글을 통해 형체를 가지고 어느 날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거란 가느다란 희망 한 오라기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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