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8
문득 하숙집 생각이 났다.
6년이나 살았던 그 대학촌의 하숙집.
1학년 가을 학기 즈음
내가 살던 하숙집에 월식하러 왔던 유난히 얼굴 하얀 그 남자.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은 모조리 아무개 오빠로 불렀던 나는 나이에 비해 어리숙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맹탕이었다. 그래도 맑고 나름대로 깊이 있어 보였던 나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여드름 때문에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탓에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할 정도로 소심했다.
문득 음악을 듣다가 그 하얀 손이 떠올랐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계사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하숙집 식구들이 많아서 밥을 먹을 때마다 식탁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지만 그는 유난히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또렷하고 야무진 인상을 받았던 그를 그해 겨울 방학 이후에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그해 가을부터 겨울이 오기까지는 살짝 가슴이 뛰는 어설픈 짝사랑을 했나 보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그 창백한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고 목소리가 좋아 어린 나이에 괜히 더 멋있어 보였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기억난다.
나에게 유난히 친절했던 그는 지금은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 하숙집에서 만났던 선배들이나 후배들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 나는 추억 속에 잠겨 들어 그 기억으로 한동안은 행복하다. 그들은 나를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하숙집 식구들과 어울려서 다 함께 밤나들이를 갔던 그날 밤, 그와 강변의 나이트클럽 푸른 조명 아래에서 얼굴을 붉히며 추었던 블루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쑥스럽고 신선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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