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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8>

편지

by 자 작 나 무 2018. 12. 10.

민석아

토론은 상대방의 반론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날 수업은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발표와 토론의 형태였기에 나는 반론자의 입장에서 네가 주장하는 바의 허점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 표현이 아마도 네가 받아들이기에 과했던 모양이다.

 

이후에 네가 마음이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나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네게 특별한 개인적 감정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 의견에 대한 반론자의 입장에서 토론에 성실히 임했을 뿐이었다고 생각해서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내가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라고 정확하게 표현했는지 '다르다'는 표현을 강하게 하느라 평소의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 인해 너의 의견을 '틀리다'라고 표현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난 네가 법없이도 살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학생이라 생각해서 그 발표 이후에 너를 달리 보게 되었는데 너는 나와는 달리 마음의 상처를 받았었구나.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준비 되지 않은 네게 너무 반박을 세게 해서 네가 마음을 다친 건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

 

점수보다는 이번 일로 너나 나나 뭔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생님의 발언이 개인적으로 너를 공격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했으면 대화를 청했어야 했는데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하고 단정하고 오해한 것은 결국 너를 더 불편하게 했고, 덕분에 시험 점수도 엉망이 됐지.

 

그래도 그건 네 선택이었으니...... 뭔가 이 사소한 일에도 이유가 있지 않겠니. 인생이 사소한 일과 사소한 일이 모여서 인생을 이루는 거니까 말처럼 결코 사소한 일만은 아닐거야.

 

앞으로 내가 학교에서 윤리수업 중에 또 그러한 토론을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반박의 발언을 할 때 언어 선택을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

 

네가 뭔가 그렇게 깊이 생각한다는 점은 참 멋있다.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선생님 수업을 안 듣는 것도 너의 선택이고, 너의 자유니까.......

 

그런데 네 답지 읽고 선생님도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나더라. 미안하다. 민석아. 이건 그 수업을 한 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네 마음을 아프게 한 게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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