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로 뽑혀서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운동하러 가면 그날 바로 목덜미 채서 집으로 끌고 가시던 내 부모님은 고지식한 독재자 스타일이었다. 핸드볼 선수로 뽑혔는데 훈련 며칠 못하고 바로 끝났고, 던지기 선수로 뽑혔는데 경기하는 날 합주부라서 합주부 옷 입고 가서 운동복 준비도 못 해서 대회 출전을 못 했다.
하고 싶은 거나, 잘하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허락된 것은 학교 공부뿐이었는데 그 흔한 수학 정석이나 성문 종합 영어 그런 것 한 권 사주지 않았다. 형편이 안 돼서 못 사봤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뭐든 부모님 몰래 하지 않으면 그 빡빡한 기준에 맞춰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집 앞에 문 열면 좁은 해안도로 그리고 바로 바다였다. 집 앞바다에서 수영 안 하고 자란 그 동네 애는 나뿐일 거다. 위험하다고 절대로 거기서 수영하지 말라고 하셔서 나는 한 번도 거기 들어가지 못했다. 동생들 수영 몰래 할 때 망은 봐줬지만 나는 하지 말라는 걸 몰래 하는 걸 거의 못 한 편이다.
책임 많은 큰 딸이어서 그랬는지 금기된 것을 깨는 걸 어려워하는 내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와중에 중학교 다닐 때부터 몰래 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오빠 방에서 카세트로 팝송을 들었다. 클래식 음악 말고는 크게 틀어놓고 듣지 못하게 하는 분이셔서 팝송을 그렇게 접하게 됐다.
오빠가 주도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조차도 못 해봤을지도 모른다. 왜 그토록 부모의 영향력 밖으로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엊그제 금요일 11월 24일이 퀸의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기일이었다. 그날 우리 동네 상영관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딸과 함께 보고 집에 와선 라이브 에이드 풀버전을 유튜브로 봤다.
옛날엔 프레디 머큐리가 무대에서 너무 나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멋진 무대 매너를 지녔다. 그 큰 무대에 러닝만 입고 나와서 성의 없다고 생각했던 10대 때와는 달리 지금은 뭘 입어도 참 멋진 남자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하염없이 긴 다리, 탄탄한 몸매, 화려한 무대 매너, 음악성, 엄청나게 매력적인 목소리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왜 나는 그땐 그렇게 편협한 시각으로밖에 그들을 볼 수 없었을까...... 나를 좁은 세상에 가둬 두고 더 넓게 보고 크게 자랄 수 없게 만든 부모님 덕분(?)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의 길마저 다 차단하고 제어하려고 하시던 분들이다. 그걸 너무 견딜 수가 없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항상 시름시름 아팠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앓기만 해서 천 갈래, 만 갈래 내 신경은 그대로 터질 것 같았다.
프레디도 자신의 성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한 것이 병이 되어 방황하고 자신을 그렇게 망가뜨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숨겨야 할 성적 성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을 많이 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속에서 끝없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3년 여름,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달리던 길에 너무 멋진 거대한 호수를 발견했다. 일정에 더 이상의 여유가 없어서 파리로 가던 중이라 그때 가볼 수 없어서 아쉬웠던 그 동네로 들어가는 도로 표지판을 찍어왔다. 집에 와서 챙겨보니 프레디 머큐리가 마지막 생을 보냈던 '몽트뢰'다.
스쳐 지나가면서 너무 가보고 싶어서 설레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다음 여행엔 꼭 몽트뢰에 가서 그 호숫가를 거닐며 퀸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그곳에 서 있고 싶다. 아직도 뭔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