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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나도 심술 난다고~~

by 자 작 나 무 2020. 8. 24.

*

여행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주말 밖에 시간이 없는데 내가 가진 여유가 부럽다며 누가 댓글을 쓴다. 부러우면 나처럼 무급 휴직 백수 하면 된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생계형 가장이어서 그럴 수는 없다며 펄쩍 뛴다. 그럼 나는 뭐 생계형 가장 아닌가?

 

백수 되었으니 시간 많아서 가진 것 좀 누리고 싶다고 썼더니...... 남의 처지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시샘부터 한다. 꼭 돈이 많아야 여행 가고 인생을 즐기는 게 아닌데, 모든 게 갖춰질 때까지라는 핑계를 앞세우고 인생을 뭔가의 노예처럼 사는 그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 그렇게 살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차도 있고, 집도 있고, 계속 다닐 수 있는 직장도 있으면서, 내가 일이 없어서 쉬는 동안 노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픈가. 참 이상한 심술이다. 

 

**

뭔가 계획하면 꼭 이상한 이유가 생겨서 계획을 망친다. 그래서 여행도 계획 없이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으면 가방 싸서 바로 가버린다. 이번엔 그럴 수 없다. 전국적으로 확산한 바이러스 전파자를 일일이 피해갈 수도 없으니 어제부터 머리에 뿔이라도 날 것 같다.

 

8월 마지막 주부터 제주도 한 달살이한다는 친구의 숙소에 얹혀서 며칠 놀다 오려고 했는데 그것도 역시 내가 무슨 수로 변수를 다 통제하고 피해간단 말인가. 그래도 가고 싶어서 몇 번씩 비행기 예약 앱을 만지작거린다. 

 

어찌 보면 꼭 제주 여행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철망에 갇힌 듯한 기분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누구든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수평선 보이는 바닷가에서 말없이 걷기도 하고, 나만의 계획이 있었다. 딸이 같이 나서지 않아도 이제 혼자도 제주도쯤은 갔다 올 수 있는데......

 

어디든 갔다가 바이러스 옮으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딸의 한 마디가 뒤통수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다섯 달가량 집안에 틀어박혀서 인터넷만 쓰는 21세기 원시인처럼 살다가 서울 바람 한 번 쐬고 보니 그래도 사람이랑 노는 게 훨씬 재밌다.

 

그런데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시절이 돼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나도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지려 하는데.....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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