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고기요리는 거의 고기보다 채소가 많다.
양파와 생강을 갈아서 재웠다는 것 외엔 평범한 불고기 양념
그리고 중요한건 집에 없는 재료는 빼고
있는 것만 넣어서 만든다.
마음에 허기가 질 때 나는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일로 풀 때가 많다. 그렇다고 시원하게 풀리는건 아니다. 그냥 지나고 보면 혹시 내가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행위자체가 끼니를 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때우기 위해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까진 그렇지 않았는데, 오늘 음식을 만들 땐 확실히 그랬다. 카레라이스를 만들려다 감자 깎는 칼에 손가락 베인 후 감자는 그대로 물에 담가두고 손도 대지 못하고 고기 한 근 사다가 양념했다.
내일 워드프로세스 시험보는 나현이네에 들고가서 함께 먹고 싶었다. 나에게 그들은 또 다른 가족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다는 우선 그들에 대한 내 마음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집에 다녀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뭔가 맛있는 게 생기면 나눠먹고 싶고 챙겨주고 싶어진다.
오늘은 마트에서 쇠고기를 좀 샀다. 양념되어 있는 고기가 얇아서 맛있는줄 알지만 내 손으로 양념해서 야채랑 섞어서 저녁 한 끼 번거롭게 반찬준비할 것 없이 함께 먹고 싶었다.
아이들 소풍가는 날 김밥을 싸면 그 바쁜 아침 아이 셋 먹일 것 싸고 언제 내 몫까지 싸서 냉큼 가져다주고 가는 사람이다. 뭐 대단한 것을 주고 받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까지 챙겨주는 그 마음이 사실은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내 마음이 그렇게 기우는 것인가보다.
나는 작은 것에 감동하고 작은 것에도 잘 삐진다. 감정이 섬세한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때는 부작용도 크다. 예고없이 음식준비를 했더니 나현이네는 오후에 아이들 데리고 외출하고 집에 늦게서야 돌아왔다. 그 집에 가져다주려고 했던 고기를 통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고 비디오 보는데 빠져 있는데 늦게 전화가 왔다.
8시가 넘도록 밖에 있으면서 저녁도 못 먹고 들어와서 지쳐있었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 싶어 고기 담은 통을 들고 단숨에 뛰어갔다. 그리곤 내 집처럼 후라이팬 꺼내서 고기를 볶아서 차려주고 앉아서 먹는 모습을 보는 사이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지영이는 그 사이 우리집에 없는 피아노를 차지하고 앉아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계명대로 피아노를 두드리고 나는 허겁지겁 늦은 저녁을 먹는 그 집 아이들 셋과 나보다 한 살 위지만 한참 언니같은 속깊은 "예쁜 아줌마"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참 좋은 사람이다. 이 동네와서 6년간 지내면서 유일하게 사귄 이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나는 사람을 사귀면 한 사람이라도 오래 진실하게 마음이 오갈 수 있는 그런 이웃이나 친구면 여럿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도 족한 사람이다.
며칠전 대전에서 보내준 차를 받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처럼 한번을 봐도 마음을 열고 가슴 속에 있는 말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챈 그 친구도 내게 마냥 주고 싶고 안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거라는.....
내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내왔길래 남자친구에게 보내려다 잘못 보낸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남자친구 사진도 덩달아 보내왔다. 8살난 아들 사진이었다. 난 그 사진 두 장을 폰메일로 받고도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보고 싶어할까봐 찍어보낸다는 그 말....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간 것처럼 느껴지는 말 한마디가 나를 감동시킨 것이다.
어떻든 내 상황이 좀 더 좋은 쪽으로 풀려서 깨끗한 집으로 이사하게 되면 내 손으로 정성들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마음 속에 항상 고마운 이름으로 남아 있는 친구분들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 언제 그럴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지만 언젠가 꼭 그렇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