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진주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진주 시내 두 곳 경유지 중 한 곳에서 딸이 타고 함께 집에 가기로 약속하고 금요일 오후 늦게 통영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딸을 만났다.
옆자리에 앉자마자 무엇이 그리 급한지 흥분한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딸은 학교에서 하는 스마트 근로를 자신이 속한 단대 건물 입구에서 코로나 19와 관련된 QR코드 확인 작업과 연락처 표기를 돕고 확인하는 일을 한다.
"엄마, 있잖아...... 나는, 집에서 엄마가 컴퓨터랑 스마트 기기를 너무 잘 다뤄서 그게 너무 익숙한데 말이야. 학교에서 엄마 또래 정도 되는 교수님이 휴대전화 전원도 켜지 않고 QR코드 찍는다고 들이대면서 안 된다고 막 화냈어."
"그럴 수도 있지...... 휴대전화 안 켠 줄 몰랐겠지."
"아니, 그게 아니야. 아예 그런 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개념을 모르는 것 같더라고. 그리고 안 된다고 왜 모르는 사람에게 화를 내? 실수는 자기가 했으면서...... 참 이상한 사람도 많더라고."
그래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나는 의외로 나이에 비해 참 유연한 사람인 것 같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며 마스크를 낀 상태로 흥분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냥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하루에 수많은 사람을 매일 대하다 보니 무례하고 안하무인인 사람을 비롯하여 너무 당연한 것도 안 하고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보니까 자기는 상대적으로 매우 착하고 바른 사람인 것 같단다.
버스 안이니 나중에 집에 가서 이야기 마저 하자고 말리지 않았으면 계속 그 경험에 대해 흥분한 상태로 이야기를 끝없이 할 것 같았다.
대학교수 정도 되면 그 정도 기본 상식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이를 무기처럼 요즘 필요한 것을 익히지 않고 거부하거나 무지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단다. 그러며 끝에는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던 자기 엄마가 상대적으로 참 유연하고 괜찮은 사람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더란다.
입구에서 버젓이 출입하는 이들을 체크하는 공식 데스크에 있는 데도 못 본 척하고 피해 가는 젊은이도 있고, 국립대 교수라는 직함이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안하무인인 사람도 있더라며 딸이 처음으로 일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한다.
"우리도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다른 사람이 우리 같을 거로 생각하면 안 돼. 우리와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많을 거야. 조금씩 알아가고 적응하는 게 세상 사는 거 아니겠어."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고향에 돌아와서 동네에서 새로 짓던 아파트 모델하우스 안내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며 겪었던 일에 비하면 그나마 학교에서 딸이 겪은 일은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직도 첫 아르바이트에서 겪은 일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그때 어리고 순진해서 하지 못한 욕을 가끔 그때 일이 생각나면 허공을 보고라도 한다.
내 딸은 나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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