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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10월 6일 산청 산책길

by 자 작 나 무 2020. 10. 6.

아무나 살짝 미는 시늉만 해도 걸려 넘어질 것 같은 가을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이 길 끝닿은 곳까지 걸어도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길

 

아무리 아름다운 곳에 가도

혼자 무얼 해도 자꾸만 쓸쓸해진다.

 

강 따라 걷다가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토란대가 눈에 띄었다. 토란 넣고 들깻가루 넣고 끓여준 토란국이 생각난다. 하숙집 할머니께서 끓여주셔서 처음 맛본 음식인데 토란을 보면 그 음식과 하숙집 할머니까지 함께 그리워진다.

 

 

 

 

 

 

 

 

 

이곳에서 말끔하게 마련된 공중화장실을 발견했다. 앞으로 이 방면으로 더러 걸으러 올 수 있겠다. 한 시간 이상 밖에서 걸으면 내게 꽤 큰 문제가 화장실 쓸 수 있는 곳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내리 저수지. 이곳엔 밤에 환하게 불을 밝혀줘서 해 진 뒤에도 가끔 바람 쐬러 올 수 있겠다.

 

 

 

산청 지성마을 

 

 

 

 

 

 

이리저리 헤매듯 걷다 돌아와서 따뜻한 물에 발 씻고 나니 피곤한 몸은 뒷전이고 마음이 더 노곤하다. 어딘가에 털썩 주저앉고 싶어서 몇 번이고 두리번거렸다.

 

 

어딘가에 주저앉아 나를 좀 데려가 달라고 떼쓸 곳이 있으면 좋겠다. 그냥 이유 없이 지칠 때 한 번쯤 그러고 싶다. 초저녁별처럼 늘 그 자리에 떠서 나를 봐주는 그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실컷 혼잣말하다가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 그 길에서 자꾸만 맴돌던 시를 옮겨놓는다.

 

 

너와집 한 채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 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 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김명인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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