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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시절 인연이 다한 곳에 다녀왔다.

by 자 작 나 무 2020. 10. 17.

내 나이 서른이었을 때,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고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던 그분 이야기를 쓰고 나서 두 시간 뒤에 정말 예정에도 없이 그곳에 인연이 있는 어떤 분과 거기에 함께 다녀왔다.

 

생각한 것이 너무 빨리 이뤄져서 놀라울 정도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혼자라면 섬이라도 갈까 하다가 시간이 애매해서 망설이던 참에 잠시 바람 쐬러 나가서는 문득 그곳에 한번 가보자는 이야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그곳에 가보니 그분이 그곳에 다시 오셨다가 떠나신 지 몇 해는 지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서 그곳의 기운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여전히 평화롭지만, 그 시절과 다른 그곳의 기운이 그간 그곳에 통 발길이 가지 않던 이유를 대변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기운을 가진 사람이 언제 어떻게 모여 지내는가에 따라 장소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확실히 다르다. 오늘 내 느낌을 그대로 말씀드렸더니 함께 가신 분도 그 기분을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우리를 알아채고 그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중에 두 번이나 나서서 말을 걸었지만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싶은 분이 아니셔서 일부러 차 마시러 들어가지도 않고 건너편 그늘에 앉아 하늘만 가만히 보다가 왔다. 꼭 맺지 말아야 할 인연을 우연히 마주쳐서 피할 수 없다면 몰라도 피할 수 있다면 시선을 돌리는 나는 이제 너무 건조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여기 앉아 있으니 그분께서 큰소리로 "○○화야....."라고 부르시던 때가 생각난다.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그렇게 부르신다면 나는 금세 그 시절 천둥벌거숭이로 변해서 온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고 쪼르르 달려갈 수 있을까......

 

이 편백 숲길을 얼마나 자주 밟고 다녔던가...... 여고생이었을 때부터 어느 경계를 넘어야 저편 언덕에 이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산 너머 있는 산문을 뒤로하고 꼭 이 먼 곳까지 혼자 산길을 넘어서라도 와야 했던 곳이다.

 

소박한 나무다리였을 때가 좋았다. 누군가 바꾼 저 다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때부터 여기 가는 게 예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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