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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

by 자 작 나 무 2020. 10. 17.

20대 후반, 나만의 깊은 동굴에서 지낼 때 가끔 뭔가 막히면 그 질문을 밤새 머금고 있다가 날이 밝은 대로 시외버스를 타고 미륵산 그곳에 찾아갔다. 그때 내가 뭔가를 여쭤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셔서 그분의 말씀을 많이 따랐다.

 

내 질문에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답을 해주셨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그 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내 의식체계의 상당 부분을 재편성하였을 때,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상당히 단순하고 수준이 낮았다. 복잡한 것을 읽지 않고 단순하게 보니까 계산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많은 것을 대하게 됐다.

그때 그분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왜 탁한 사람과 어울리느냐?" 였다.

 

내 주변의 상황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누구라도 손을 내밀면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림도 없는 사람과 어울렸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다 믿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내면서 줄줄이 사기를 당한 셈이다.

 

그분의 눈에는 보였던 모양이다. 탁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그때는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무슨 뜻인지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그래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물론 많은 상처와 금전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를 상상도 못 한 수준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온전히 겪어냈다.

 

그 당시의 단순한 의식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을 요즘처럼 단숨에 내치거나 눈도 맞추지 않고 돌아섰을까? 그렇게 감당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피해야 할 것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하는 상태였다.

 

그분이 그곳을 오래 떠나 계시다가 최근에는 다시 그곳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날에 한 번 차 마시러 가야겠다. 지금의 나를 보면 얼마나 웃으실까. 20대의 내 모습을 보셨고, 아이 낳고 퉁퉁 부은 내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셨으니 지금의 내 모습이 새삼스럽지는 않겠지만 그사이 세월이 흘러 내가 어느새 50대가 되었다. 

 

그곳에 가지 않고 여태 시간을 보낸 이유를 방금 떠올렸다. 어쩌면 앞으로도 혼자 그 길을 가지는 못할 것 같다.

 

*

삶이 얼마나 피곤해질지 알기 때문에 탁한 사람은 되도록 피한다. 가끔 눈이 멀어 내가 피하지 못하면 상대가 나를 피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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