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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잔잔한 일상

by 자 작 나 무 2020. 10. 21.

어제 아침, 남 선생님께서 출근하시면서 들꽃을 한 바구니 담아오셨다.

"가을 갬성 죽이지~~~요."

내가 천에 그리던 것이 구절초라고 생각했는데 들국화도 아닌 것이 구절초도 아닌 것이 둘을 섞어놓은 형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얀 구절초가 참 예쁘다. 

 

 

전 학년이 등교하면서 점심시간이 길어졌다. 점심 먹고 가볍게 주변 한 바퀴 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교시 혹은 5교시 수업 없을 때만.

 

학교 옆 면학정에 처음 올라가서 앉아봤다. 사방에서 오는 바람이 선선하니 좋아서 한숨 자고 싶었다. 호방한 남 선생님은 개량 한복에 버선발로 다리 뻗고 누우셨고 나는 얼굴에 시원하게 불어 드는 바람을 잠시 즐겼다. 낮에 어찌나 더운지 아침에 입고 왔던 트렌치코트며 카디건까지 다 벗어도 얇은 블라우스에 땀이 찬다.

 

 

학교 근처에 천연 염색하는 자활센터에서 염색한 스카프를 세 개 샀다. 영업의 달인 남 선생님의 입김이 지나가면 누구나 가서 몇 개 살 수밖에 없다. 그곳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려주셨고, 얼마 전에 가서 슬쩍 눈으로 훑고 오기만 했는데 은은한 색감이 좋아서 선물할 것과 허전한 내 목에 두를 것까지 넉넉하게 샀다.

 

오늘 아침, 남 선생님께서 덕산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평일 손님이 들었다고 아침 식사로 장만한 음식을 더 준비하여 가져오셨다. 유기농 밀가루를 가볍게 입혀서 구운 전과 엊그제 나를 데려다주고 가시면서 강 선생님께서 내 가방에 담아주신 사과와 배를 함께 먹으며 아침에 잠시 즐거운 다과 시간을 누렸다.

 

감사의 뜻으로 바쁘게 1교시 수업에 들어가신 남 선생님께 드릴 커피를 한 잔 내려서 갖다 드렸다.

 

와일드 오 선생님은 이번 주말에 서울 가면 추울 거라며 반소매 내의를 하나 챙겨서 갖고 오셨다. 생물학적으로는 내 나이가 몇 살 많은데 나는 이 연구실에서는 막내 같다. 두 언니께서 살뜰히 챙겨주신다. 철마다 마음 붙일 데 없이 옮겨 다니며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과 정을 섞기 어려운데, 이런 호사는 처음이다.

 

무슨 복이 많아서 올가을은 이토록 따뜻하게 가슴에 단풍이 드는 것인지......

 

 

어제 잔걸음으로 총총거리며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나 보다. 일요일 밤엔 일주일 원격 수업하고 거의 열흘만에 기숙사에 온 학생들과 활력이 넘쳐서 그냥 잘 수 없는 학생들이 함께 새벽 2시가 넘도록 날뛰는 바람에 잠을 설쳤고, 다음날은 새벽까지 옆에서 세탁기가 돌아가고 물소리가 크게 나서 또 잠을 설쳤다. 깊은 잠에 못 들어서 몽롱한 상태로 이리저리 다녔더니 어제는 그대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오랜만에 꿈도 꿨다. 늦게 슬쩍 든 아침잠에 꿈꾸느라고 제때 일어나지 못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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