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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11월 7일

by 자 작 나 무 2020. 11. 7.

생활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오다가 누군가를 문득 어느 날 만나면 당장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막막함이 나를 멈추게 한다. 그 당시엔 아무 표정 없이 담담하였지만 지나고 생각하니 오랜 시간의 끈으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한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것처럼 어두운 방에 누워있으면 영사기를 통해 천정에 상영되는 영화처럼 한 장면씩 떠오른다.

 

밝게 웃고 있는 내 이면의 아픈 시간의 흔적을 아는 사람이 담담하게 나를 보며 무슨 말인가를 끊임없이 한다. 나는 연신 고개만 끄덕이고 만남의 시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꼭 해야 할 말조차 아끼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가한 주말에 잠시 나들이 가듯 다녀온 나와는 달리 바쁘고 쫓기는 시간을 빼서 내어준 것에 대한 감각이 무뎌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점령하고 온 내가 그가 내어준 시간에 얼마나 큰 감사를 해야 하는지조차 뒤늦게 알았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만날 수도 없었다. 11월로 접어들면 해마다 그랬듯이 목이 간지럽고 잔기침을 시작하기에 사람을 만나 기침하지 않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시기가 그때까지였다. 함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바쁜 중에 시간을 내주신 그분께 감사하며......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란다.

 

 

*

목이 계속 간지러워서 커피를 끊어야겠다고 써놓고 커피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마셨다. 이제 블로그에 공언하는 것조차 지키지 못한다. 커피는 역시 예외인가? 어떻게 커피를 끊어...... 아주 죽을 것처럼 아플 때 외엔 못 끊지.

 

커피를 계속 마시기 위해서 오메가3, 멀티비타민이 떨어지지 않게 사들이고, 구증구포했다는 흑도라지청을 왕창 샀다. 

 

3주 만에 집에서 만난 딸이랑 떨어져 지내는 동안 각자 자기 생활의 틀이 생긴 것인지 서로 다른 방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잠만 같이 잔다. 지난주에 주중에 두어 번 찾아가서 잠시 얼굴 보고 온 것 때문인지 엄청나게 반갑거나 애틋하지도 않고 이제 분리된 삶에 서로 적응한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처음 발을 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고, 의외로 쉽게 적응한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 나만 혼자 어떻게 살지 걱정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 내 현실이다. 딸은 이미 저만의 인생에 가지 치고 뿌리도 내린 것 같다. 

 

 

*

우리와 삶과 생각의 굴레가 다른 이의 삶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같은 시간대에 다른 차원의 삶의 단계를 동시에 체험하는 것이라는 내 말에 딸이 공감했다. 조금 깊이 있는 대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표면적으로 알아채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내 생각의 변화에 따라 일어난 사소한 변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거니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문데, 딸과 그런 대화가 된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 우리가 미미한 존재이므로 생각하는 힘이라도 한데 뭉치고 엮어야 할 것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동지는 둥지를 떠났고, 나는 이제 떠돌이처럼 떠돌게 될 것 같다. 어딘가에 안착하고 싶었는데 나를 붙들어둘 곳이 없다.

 

나를 오래 두고 본 옛 동지가 어느 날 전화를 해준다면 참 고마울 것 같다. 옛날이야기라도 하고 싶은데 이야기할 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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