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08. 07:15
아르마딜로
나라는 것이 본시 경계도 장막도 없어서 누구라도 안을 들여다보면 형체 없이 허물어진다. 상대를 닮은 그림자가 생긴다. 나를 이루는 주성분이 형상 기억 합금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르마딜로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쉽게 부서지는 나를 안고 있다.
2020. 11. 08. 19:19
갑자기 어느 순간
얼마 만인가
이런 절망적인 고통과 직면해본 것이.....
지나가는 것이기에 견뎌야 한다.
차에 오르자마자 어지럽더니 이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꾹 참다가 생각해보니
옆자리에 마침 딸이 앉아있다.
숨을 몰아쉬며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곳곳을 최대한 아프게 눌러 달라고 했다.
10여 분이 지나고 내 손바닥이 헐 것 같은 통증에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돌리고 몸을 비틀고 앉았다.
이내 다시 느껴지는 아찔한 통증에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달리는 버스 바닥에 드러눕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멀미, 급체......
그런 종류의 오류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고
뭐든 죄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통증이란 그런 것이다.
나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딸이
제 짐을 들고 내린 뒤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지던 순간이 여러 번 끊겨서 흐른 뒤에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정시에 버스 출발 홈에 있어야 할 버스는 이미 떠났다.
갈아탈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다시 37분을 보내야 했다.
버스를 놓친 게 차라리 다행이다.
이 상태로 시외버스를 또 타면 토할지도 모른다.
차를 살까......
운전하다가 의식이 아득해지는 순간,
보이지 않는 장막 너머로 그대로 가버리고 싶은 충동에
액셀을 밟게 되는 끔찍한 시뮬레이션이
현실이 될까 봐 여태 망설였다.
오늘은 차라리 그렇게라도 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거북한 통증과 불편한 상황이 계속됐다.
그때 그 순간 곁에 딸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절망감과 끔찍한 통증을 견디지 못해서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일순간의 의식 변화를 누르지 않고 따라가며 읽어본다.
적나라한 고통 속에 노출된 기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간 잊고 있었다.
아픈 게 좀 가라앉으니 금세 생각이 달라진다.
삶의 고통 속에 허우적거릴 때
떠오르는 생각은 다분히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띤다.
한 가지 고통이 잠잠해진 뒤,
연이어 다른 통증이 찾아든다.
숨길 수 없는 통증이 드러날 때
그것을 견디는 것도 힘들고
타인의 시선을 감당하는 것도 등에 땀이 바짝바짝 난다.
2020. 11. 08. 22:39
일찍 잠들기 위해
약을 먹어도 금세 좋아지지 않아서
최대한 생각을 흐물흐물하게 만들고
안테나도 내리고
따뜻해지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주술처럼 말하고 또 말하고
말의 온기를 머금고 잠을 청한다.
나를 살리는 생각, 따뜻해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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