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으로 나갔다가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정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물빛도 차고 울긋불긋해진 산빛도 차게 느껴지는 해 질 녘, 이젠 강변을 걷는 것도 마음부터 서늘해져서 못하겠다. 어제부터 느끼던 체기가 다 가라앉지 않았는지 억지로 먹은 저녁이 등짝에서 걸린 것처럼 등도 아프다.
지난주에 길에서 혼자 소리 내서 울던 생각이 퍼뜩 나서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그 자리에 서면 또 그 생각에 시달릴 것 같다. 그 트라우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퇴근하고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이렇게 부럽다니......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이렇게 부럽다니.....
텅 빈 기숙사에 들어가서 컵라면을 종류대로 꺼내서 가방에 담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나마 컴퓨터라도 마음 편하게 쓸 곳이 이곳뿐이다.
연구실 냉장고에 남 선생님께서 갖다주신 김치가 남아서, 컵라면 몇 젓가락 먹고, 어제 통영에서 오면서 들고 온 빵을 데워서 깨작깨작 먹다 보니 눈물이 핑 돈다.
아침에 들은 이야기도 답답하고, 갑자기 우울증 환자처럼 시도 때도 없이 눈물 나고 정신이 나갈 듯 현실이 아득해지는 순간도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집에서 이틀 쉬고 왔다고 이렇게 적응하기 힘들어진 것인지...... 아니겠지. 해지면 갈 곳도 할 것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이곳이 겨울 찬바람과 함께 생지옥 같아진 거다.
이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을 입에 담을 수도 없지만 들은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다.
그분 말씀처럼 영화 '이끼'보다 더한, 더 더러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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