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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어제

by 자 작 나 무 2020. 11. 11.

나만의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나니 외적 요인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게 된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기 위해  두 달짜리 새 프로그램을 짰다.

 

어차피 해는 일찍 지고, 해진 뒤에 내가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꾸준히 실행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너무 익숙해져서 지겨워지거나 불편하면 잠시 쉬었다가 또 다른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된다.

 

통영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타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5분가량을 쉬고도 신기하게 4시간 만에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차량 정체 구간을 만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몇 번 유심히 관찰한 결과 과속도 하지 않고 속도를 떨어뜨리지도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비결이었다.

 

휴게소에서 같은 시간 만큼 정차하고 간혹 과속하며 달려봐도 그 시간 안에 서울에 도착할 수 없었던 개인적 경험과 견주어 차이점은 그것이었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일정 속도로 달리는 것. 

 

계절이 반복하듯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운동장을 한 시간 동안 일정한 속도로 걸으면서 지나쳐가는 사람과 풍경과 시간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시선을 고정하고 걸었다. 나를 의식하던 이들이 한참을 지켜보다가 점차 나를 붙박이 그림처럼 인지하고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졌다. 존재하면서 투명해지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