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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Beethoven's silence

by 자 작 나 무 2020. 11. 11.

 

간혹 심장이 타거나 혹은 녹아내릴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통증에 시달릴 때, 겨우든 잠에서 깬 새벽의 소리없는 흐느낌처럼 어느 날 전신에 물들듯 흐르던 선율이 영화 '식스 센스'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인이 주인공을 그리워하다 잠든 의자에서 손에 쥐고 있던 반지를 잠결에 눈물처럼 떨어뜨리던 장면과 함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피아노 선율만 떠오를 뿐, 곡의 제목도 작곡가도 떠오르지 않고 단지 Ernesto라는 속삭임만 희미하게 떠올랐다. 오늘 2000년대 중반의 일기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그곡의 제목을 발견했다. 어느 날은 일기에 그 곡의 제목을 기록해둔 것이 있었다.

 

오늘 애플뮤직에서 그 곡을 찾아서 다운로드하고 작곡가 Ernesto Cortazar의 다른 곡도 찾아서 들었다. 

 

그대로 굳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청천벽력 같은 통증에 온통 빠져있던 시절에 느꼈던 절망감과 슬픔이 숨을 들이쉬는 순간 시공을 초월한 냉기처럼 폐부 깊숙이 들이쉰 숨결과 함께 전신으로 퍼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회상의 효과로 이 음악에 각인된 시절은 다시 겪으라고 하면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서 화석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Beethoven's Silence

청력을 상실한 그가 겪은 침묵 속에 존재했던 소리는 어떠했을까? 내 인생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듯한 현실에서 온전히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그때, 내 기억은 현재라는 시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공간에서 살았던 듯하다.

 

문득 소리를 잃는 꿈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깼던 날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듣고 싶은 곡을 반복해서 듣고 또 들으며 눈을 감아도 귀를 닫아도 들리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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