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할 수 있는 일만 있다면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혼자 밥 먹고,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어디서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들과 잡담을 댓글로 나누면서 잠시 쓸쓸함을 삼키는 것으로 연명하는 이런 주말.
이런 생활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같은 기대가 있기에 견디는 것이지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자식에게 신경 쓰고 거기에 매달려서 내 인생을 묻어가는 시기는 이미 기한 만료. 이 너머의 삶은 거의 50년은 족히 버텨야 할 텐데 익숙해지면 혼자인 삶에도 정착하고 안주하게 될까.
혼자라고 해도 그간은 자식을 끼고돌았으니 견딜만 했다. 새 출발 지점으로 집을 떠나서 사는 삶에 첫발을 디뎠고, 이 삶 또한 길게 계획된 것은 아니어서 견디는 거다.
온전히 남을 위해 나를 다 던질 수도 없으면서,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사는 삶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다. 적당히 걸쳐져야 삶이 절름발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은 서로에게 반쯤 걸쳐서 서로의 존재를 빌미로 문제가 생기고 발전하는 것이다.
고통 없는 깨달음이 쉽게 오는 게 아니라고, 고통은 필수 요소라고 하던데 삶이 제공하는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요령이 생기면 그럭저럭 견뎌진다. 외로움은 처절한 고통은 아니다. 다른 문제가 생기면 잠시 눈감고 비껴갈 수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수도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내가 시들시들하고 더 낼 수 있는 기운을 차릴 수 없다면 굳이 편안함만을 이유로 혼자인 삶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번거롭더라도 이왕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기로 했으면 어딘가에 조금 걸쳐져야 한다.
나처럼 아예 혈연이라는 것조차 천륜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짜 맞춘 관계일 수 있음을 알고 서로 쏟아붓고 주고받을 것이 정리되었다면, 한발 물러서는 것도 어쩌면 순리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믿음으로 뚝 떨어져 사는 경우엔 이 홀가분함이 늘 비어있는 공간으로 평생 내 곁에 함께 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너무 뻔한 문제로 다투지 않아도 좋을 적당한 정신적 진화 과정을 거친 상대와 살짝 걸쳐진 삶을 시작하고, 남은 생에 마저 해야 할 과제를 때에 맞춰서 해내며 살고 싶다. 이번 생에 더해야 할 것이 없었다면 진작에 내 명은 줄어들어서 벌써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금세 어느 날 죽을 것 같던 목숨이 이렇게 천천히 길어지고 호흡도 길어지는 것을 보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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