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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3>

흐르는 섬

by 자 작 나 무 2003. 5. 31.


이틀 연이어 내린 봄비를 핑계로 방안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고 오후 늦게 구름 걷히는 것을 보고서야 산책을 나섰다. 어디로 갈지 모르면서 그냥 아이랑 손잡고 집을 나섰다.


골목을 나서면 바로 바다가 보인다. 다리 하나를 끼고 바다 너머는 육지, 여긴 운하를 낀 섬이다. 내가 사는 곳만 섬인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어쩌면 섬 같다. 누구든 쉽게 다가올 수 없도록 혼자 사방에 바다를 끼고 오뚝 앉은 섬 하나. 그게 내 모습 같다.

며칠 사이 한산도, 욕지도 두 섬에 다녀왔다. 섬에 살면서 배를 타고 섬으로 간다는 게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내가 사는 섬엔 다리가 있으니 배를 타지 않아도 언제든 뭍으로 건너갈 수 있다. 그처럼 인터넷은 세상으로 나를 이어주는 연륙교 같은 것이다.

전원을 켤 때마다 눈을 뜨고 세상을 흘낏흘낏 훔쳐본다. 정처 없이 표류하는 섬 같은 나는 정박할 곳이 없다. 어디든 이방인 같은 느낌에 늘 가본 곳만 찾아서 기웃거리다가 결국엔 지쳐서야 다시 전원을 끈다.

비 갠 뒤라 시야가 깨끗해서 이틀의 깊은 우울함이 구름 걷히듯 스르르 걸음걸음마다 걷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린다. 긴 머리를 목 뒤로 쓸어 넘길 때마다 가슴이 뛴다. 소녀적 감성인지 감상인지 모를 미묘한 감정의 늪에서 꿈틀거리는 그 무엇이 아직도 사소한 것에도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인지.

한동안 파헤쳐 놓았던 가로수를 말끔히 정리해놓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나와선 화실 언니랑 저녁 약속을 하려고 전화기를 꺼내는 순간 길 건너에 낯익은 아이와 아이 엄마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빌린 비디오테이프를 갖다주러 가는 길이란다. 제목을 보니 '동갑내기 과외하기' 평소에 즐기는 타입의 영화는 아니지만, 어딘가 남아 있을 우울을 날려버리려면 저런 영화 한 편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에 그 테이프를 건네받았다.

바람이 약간씩 부는 선선한 날씨가 꼭 초가을 느낌 같아 더 걷고 싶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함께 저녁을 먹자기에 버스를 타고 가끔 가던 음식점을 찾았다. 화실 언니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다지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연신 웃어가며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내내 마음 한구석이 시리고 이상한 느낌 때문에 빨리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고 싶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며 노래방까지 가자는 그 아이 엄마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끌려가듯 몇 년 만에 가본 노래방. 밀폐된 공간에서 누군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고음처리 안 되는 내 목청을 양껏 들려주는 게 부끄러워 좀처럼 가기 싫었던 자리다.

 

이왕 들어갔으면 본전 생각나지 않게 놀다 와야 한다는 생각에 노래 목록이 있는 책을 열심히 뒤적이는 사이에 내 딸은 스피커에서 울리는 큰 소리에 정색하며 등에 매미처럼 꼭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않고 바들바들 떠는 것이다. 아이 핑계를 대고 얼른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미안한 마음에 애를 달래보는 척(?)했지만 울기까지 해줘서 구원군 노릇을 한 셈이다.

노래방에 굳이 가지 않아도 집에서 인터넷을 하는 동안에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곧잘 몇 소절씩 따라 부르곤 하는데 아이는 그럴 때마다 시끄럽다고 말하는 걸 보면 역시나 내 노래는 남이 듣기는 거북한 수준인가보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에 산책까지 했더니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지쳐 잠이 들고 피곤해서 누운 자리에서 답답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빌려온 비디오를 보기로 했다.

내용은 뻔한 줄거리였지만 남녀 주인공 둘이 가을 낙엽 위에 누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올 때 갑자기 코끝에 서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문득 떠오른 기억처럼 그 장면을 본 순간 각인되어 있던 어떤 냄새가 나를 전율케 했다.

가을 냄새였다.

낙엽, 조금은 차가운 바람. 그것들이 코를 통해 가슴을 관통하고 머리로 되올라갔을 때 느껴지던 그 느낌이었다. 그 냄새를 기억해내면서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흐느낌이 통곡이 되어 기침이 올라오도록 실컷 울고 나니 추억 어린 그 냄새가 진정제처럼 다시금 가슴을 서늘하고 차분하게 해준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통증 때문이었을까. 그 통곡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쌓인 것이 많다 보니 어디서건 터질 수도 있는 울음보였으니 슬퍼서 울었지만, 그 슬프고 아픈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아프고 슬픈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어차피 잔잔한 호수 같을 수 없는 인생이니 차라리 아프고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즐길 수 있다면 즐겨보려 한다.

굴곡이 많아서 아슬아슬하고 당장 내일이 감감할 지경으로 생활이 위태위태하면서도 뻔뻔하게 순간을 즐긴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그 묘한 느낌들을 즐기는 것이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춤추는 것보다 즐겁다. 정적 속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내 영혼의 느낌이 좋다. 아픈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이것이 참 좋다.

며칠 전 면접 본 곳에서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접기로 했다. 아직도 부릴 여유가 있냐고 다들 반문하겠지만 이렇게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 수 있는지 두고 보기로 한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을 때나 존재하는 나는 흐르는 섬일 뿐이다. 내가 어디로 흘러가건 얼마나 파도에 쓸리고 부서지건 내가 흘러가는 인생의 여정일 뿐이므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내동댕이쳐진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것일 테지.

비디오 보다가 엉뚱하게 기억해낸 가을 냄새에 눈물쏟는 어쩌면 좀 이상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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