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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오랜만에 바닷가 산책

by 자 작 나 무 2020. 12. 12.

갓 담은 김치 좀 가지고 왔다며 잠시 들르셨다기에 따뜻한 국수 한 그릇 같이 먹기로 했다. 외출하지 않는다고 머리도 감지 않고 잠옷 바람에 있다가 마스크 쓰고 동네 국숫집에 가서 수제비를 먹었다.

 

그사이 리모델링 해서 내부는 깨끗해졌는데 음식값을 생각하면 국수 먹으러 손님이 예전처럼 자주 들기는 어렵겠다. 예정에 없던 음식을 먹어서 잠시 바닷가에 산책도 하기로 했다. 물건만 건네주고 가신다는 걸음이 길어졌다.

 

집에 오면 입 꾹 다물고 혼자만 있다 보니 사람 만나면 나도 모르게 물고 늘어지는 모양이다.

 

마리나리조트 방향엔 혹시나 사람 많을까 하여 한산리조트 방향으로 갔다. 주차장에 빈자리 없는 것을 보니 노는 사람은 다 어떻게든 노는 모양이다.

 

 

나는 해드리는 것도 없는데 시시때때로 나를 돌아봐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일몰 구경하는 요트가 마침 들어온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요괴가 가득 탄 배가 뭍에 들어오는 시각이 이런 어스럼이었던가....... 요트에 밝힌 불빛이 물 위로 길게 늘어지는 것을 보고 문득 나는 엉뚱하게도 그 생각을 했다.

 

 

혼자 왔으면 6km 정도 되는 길을 미련하게 끝까지 다 걸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바람만 좀 쐬고 돌아섰다.

 

자주 보던 풍경인데 오랜만에 보니까 어쩐지 산 너머로 살짝 보이는 빛과 그림자가 더 그윽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온통 어두워도 환하게 불 밝히고 늘 춥지 않은 곳은 따로 있다. 

 

이제 미뤄둔 일 열심히 하고 내일 또 산동네로 건너가야지. 집 밖에 나가지 않다가 잠시 나갔다 온 것만으로 기분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데 왜 우리는 그간의 자유를 그토록 홀대했을까.

 

나는 백수로 지낼 때마다 내가 누리게 된 시간이라도 펑펑 써보겠다고 차비만 들고도 여행 많이 다니고 그 자유를 흠뻑 누린 편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가지지 못한 것을 좇느라고 자신이 가진 것을 홀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는 그때 못했다고 돌아서서 후회한다.

 

지금 우리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고 그다음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혼자 있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 혼자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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