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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12월 12일

by 자 작 나 무 2020. 12. 12.

딸이 대학 진학하면 이사할 계획이었다. 이 집에 이사든지 십수 년이 지나면서 쌓인 잡다한 물건이나 짐은 어차피 거의 다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여기 사는 동안 잘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획과 다른 지역으로 진학해서 이 많은 짐을 처분하고 이사할 이유는 없어졌다. 방바닥에 보일러 배관이 깨져서 방 하나는 난방도 못 하고 바닥에 깐 장판은 우리가 이사 온 2005년에도 이미 낡았던 것을 새로 교체해주지 않았다.

 

이 집을 경매로 싸게 산 전 주인이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손봐서 꽤 이득을 남기고 현재 집주인에게 팔았다. 물이 새는 곳도 있었고, 건물 곳곳에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대충 봐서는 그 하자를 알 수 없다.

 

현재 집주인은 우리가 사는 공간 외의 대부분의 공간을 뼈대만 남기고 다 공사해서 건물을 사들인 비용 못지않게 많은 돈을 들였다. 우리가 이 집에서 나가면 같은 층을 확 터서 60평이 넘는 넓은 공간을 한 집으로 만들 계획이다. 우리가 아직 이사 가지 않고 있으니 그 계획을 유보하고 옆집을 집주인 딸이 사용할 수 있게 고쳤다.

 

쫓겨나지 않는 한 이사는 쉽게 결정할 것이 아니다. 딸이 여섯 살 이후에 살면서 생긴 모든 기억은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니 고향집으로 생각하고 낡고 허름해도 여기서 버티는 거다.

 

불편한 점이 많아도 익숙해지면 그 불편함에도 적응한다. 이미 적응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 집에서 적어도 3년은 더 버텨야 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 딸이 집에 오면 앞으로 어떻게 할는지 이야기해야겠다. 3년 뒤에 경기도에 임용고시 친다고 꼭 그곳에 가서 살겠다고 이야기했으니 그때 이사하게 그냥 버틸 것인지, 진주로 아예 이사할 것인지. 쉬운 일이 아니다. 

 

*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고 의논할 데가 없어서 먼저 블로그에 쓴다. 내 기분이나 흘러가는 생각 속에 숨은 욕구와 문제를 찾아내고 그 다음에 해결하는 거다. 글을 쓸 때 모든 것이 계획한 상태로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씩 거름망없이 쏟아놓다 보면 걸리는 것을 발견하는 거다.

 

글을 쓰다보니 내 문제는 이사하는 게 아니라, 의논할 상대가 없다는 것에서 멈춘다.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 전에 그런 대화를 했던 친구가 하나씩 사라진 이유까지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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