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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햇빛 좋은 날

by 자 작 나 무 2020. 12. 28.

일요일 오후 늦게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

거의 이곳을 벗어나는 일 없이 

요즘은 교내에서 24시간을 보낸다.

저녁 사 먹으러 나가는 일조차 생략하고 산다.

 

 

 

그런데 오늘 원두가 떨어져서 커피를 못 마신 덕분에

낮에 햇볕 좋은 시간에 밖에 나갔다 왔다.

 

햇빛이 찬란한 한낮에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숨 쉬고 서있는 자체에 행복감이 느껴졌다.

 

날씨가 좋아서 행복하다.

후식으로 나온 음식이 남아서 

기숙사에 넣어놓으러 가는데

문득 거기 처음 발을 들였던 여름이 생각났다.

 

생각보다 기숙사가 깨끗해서 좋았고,

학교 운동장엔 파릇파릇한 잔디가 예뻐서 좋았다.

 

모든 것이 새로워서 

하나하나 관찰하며 젖어드는 동안 

순간순간 얼마나 행복했던가......

 

6개월의 긴 백수 생활을 접고

처음으로 낯선 동네에 살아보게 되어 좋았다.

 

 

십수 년 유리벽 너머로 바라보기만 하던 

오랜 블로그 친구와 얼굴 마주하고 밥 먹고

수목원 산책도 할 수 있었던 올가을의 기억과 함께

자잘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많은 한 해를 보냈다.

 

커피 한 잔 사러 학교 근처 카페에 나갔더니

문을 닫았다. 조금 더 걸어서 이런 촌에도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한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 사서

텀블러에 담아왔다.

 

운동장에서 나를 반겨주는 예쁜 학생들과 

가벼운 잡담을 나누고 하늘 보며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쭉쭉 들이키는 카페인의 묘술까지 더해져서

오늘처럼 화사한 볕에 눈조차 뜨기 힘든

저 겨울 햇살에 그간 지나간 일이 한 가지씩

아름다운 추억으로 정리된다.

 

이만하면 올해 참 잘 살아냈다.

 

 

내년은 올해보다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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