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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0>

12월 31일

by 자 작 나 무 2020. 12. 31.

*

작년 오늘엔 뭘 했는지 뒤져보니 일기를 쓰지 않았다. 12월 초에 입원해서 수술받고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일 하느라고 죽을 맛이었다. 그전엔 매일 진통제로 버티다 못해 밤새 잠 못 자고 통증에 시달리며 통곡하기 일쑤였다. 근무 중에도 너무 아파서 진통제를 먹고도 효과가 없을 정도로 반복되는 통증에 화장실에 가서 이 악다물고 울었다.

 

들키면 일 못하게 될까봐.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며칠 병가 내고 겨우 눈치 봐가며 급한 불은 껐다. 그다음에 어떻게 견뎠나 싶은 시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아프고, 바쁘고 힘든 이야기 기록하지 않으려고 그냥 지나갔더니 뭘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야 겨우 떠오를 정도다.

 

차라리 그렇게 지나간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

오늘은 뭔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는,  딸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찾다가 날도 춥춥하니 만만한 국밥과 수육을 주문했다. 주문이 접수되었다더니 곧 재료 소진이라고 전화가 왔다.

 

설거지하는데 딸이 내 전화기를 들고 와서 전화를 받으란다.

"그냥 네가 좀 받지 그래....."

"엄마 전화잖아....."

"그냥 대신 받아도 돼. 나 너처럼 남자 친구 있고 그런 사람 아니야....."

 

딸이 올해 첫 연애를 시작했다. 며칠 전에 공식 커플 선언을 했다. 난 말 안 해도 썸 탈 때부터 눈치채고 블로그며 카페에다 글도 썼는데 저는 모르고 이제야 말한다. 어떤 남자를 사귀는지 궁금하다. 밥 먹고 슬슬 캐물어볼까~

 

 

*

밥 먹고 나니까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분다.

딸: "걔가 누나라고 불러......"

나: "재수했어도 그래도 동기잖아. 근데 누나라고 불러?"

딸: "응"

나: "그럼 연애의 신호탄은 어떻게 시작된 거야?"

딸: "난 걔가 어느날은 말할 줄 알았는데 안 해서, 나한테 관심 있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걔가 그렇다고 해서 사귀기로 했어."

나: "푸하하하~~~~ 겨울방학에 보고 싶으면 통영에 놀러오라고 불러~" 

딸: "그렇잖아도 걔가 나 보고 싶으면 통영 가야 하냐고 하던데.....ㅎㅎㅎ"

 

아주 씐난 딸이 전화하러 쪼르르 제 방으로 간다.

 

남친이 누나라고 부른다니 이건 아니지~ 

관심 있냐고 물어보는 패기가 

연하의 남친을 만든 비결이었구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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