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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가난한 사랑 노래

by 자 작 나 무 2021. 1. 12.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가난한 자의 외로움과 사랑은 이 세상에선 차마 지녀서는 안 될 것인 듯, 가난하고 병든 몸으로 나설 수 없던 마음을 꽁꽁 여며두고 긴 세월 숨죽여 살다 보니 어느 날 되살아난 이 마음. 그때 이루지 못한 것을 다 이룰 수 없다 하여도 애타고 설레고 가슴 저미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고 가라고 내게 주는 축복인 듯 다채로운 이 감정을 껴안고 복에 겨운 한 철을 산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내려앉을 살얼음판을 딛고 내일까지만이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다시 가난하고 병든 몸으로 등 돌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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