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변하는 속도와 인간이 변하는 정도를 고려하면 자연과 가까이 있는 것이 낫겠다. 복잡한 지옥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작년 1월 한 달 부산 살이 해본 경험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생활이 일상화한다는 것은 인생이 역주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 멀지 않은 지리산 계곡 한 번 찾아가기도 쉽지 않을 그곳을 사람이 그리워서 옮겨가는 것은 외로움이 주는 일시적 혼돈에서 비롯한 생각이다.
이왕에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니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 더러 옮겨 다니며 살아도 굳이 삶의 편의와 질적인 우위를 버리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내가 공기 나쁘고 복잡한 도시를 찾아 옮겨갈 이유가 없다.
몇 해 지난 뒤에 정말 딸이 그 지방으로 취업한다면 그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이대로 내 생활이 무너지지 않게 자신을 잘 지탱할 궁리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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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손을 대지 못하던 일은 그냥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부족한 내 능력이 충돌하여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 발등에 불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찾는 지점을 택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네 명이 나눠서 한 일의 결과물을 나 혼자 작성하라는 이 상황에 대한 약간의 불만, 가장 약한 고리가 될 수밖에 없는 단기 계약직의 설움은 내 몫이다. 짜증 나서 이런 일 하고 싶지 않지만,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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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기운 없이 축 늘어져서 방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누워서 숨만 쉬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몸 상태가 이상했다. 그런 상태로 일을 손에 잡으면 더 화날 것 같아서 그냥 누워서 잠들어버렸다.
커피를 일부러 마시지 않았더니 내 피곤한 몸 상태를 속이지 못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정리를 위해서 밤늦게 원두를 갈아서 커피 두 잔을 내렸다.
에티오피아 모카시다모 한 봉지 사서 아주 맛있게 잘 마셨다. 카페인의 힘으로 마지막 정리 잘하고 주중에 추워지면 이대로 계속 집콕하고 남은 시간 정리 잘해야겠다. 뭘 더 바라나. 기침할 때마다 목이 답답해질 때마다 나를 한없이 낮추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