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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자리를 알아볼 때가 되어서 증명사진을 새로 주문했다. 너무 오랜만에 온라인 인화하는 곳에서 주문하다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작은 사이즈로 인화 주문을 2장 넣고, 널리 쓰이는 사이즈로 2장 주문을 넣었다. 사진을 택배로 받기 전까지는 전혀 내 실수를 알지 못했다. 5천 원은 그냥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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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에 연말정산 때문에 산청에 다녀왔다. 강 선생님께서 일부러 시간 내서 차를 태워주셨다. 요즘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갱년기 증상이라며 다녀오는 길에 차에서 내릴 때 건강보조식품을 한 통 주셨다.
사춘기보다 무서운 갱년기를 지나는 중인 모양이다. 반복되는 우울감에 평소에 내가 하지 않는 선택과 실수를 일부러 저지르는 악마 하나가 내 속에서 같이 사는 것 같다. 그 악마에게 오늘도 계속 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폭식과 멍 때리기만 했다.
이대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대책 없이 끝까지 오리발 내미는 나는 처음 경험한다. 이게 나야? 불안하고 초조해하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정말 미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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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잘 놀던 카페 게시판에 글쓰기를 끊은 지 내일이면 열흘째 접어든다. 중독처럼 아무 말이나 남발하던 나를 돌려세우느라 그냥 마음먹었을 때 끊어보는 거다. 점점 멀어지다가 잊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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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글루스에 로그인했다. 잠금한 2008년 게시물을 읽다 보니 늘 악연은 존재하고 비켜가지 못하고 겪을 것은 다 겪는구나 싶다. 그런데 정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글을 읽어보니 그때 내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바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내가 쓴 글은 그때 그 심정이 그대로 농축되어 어제 일처럼 기억나게 하는 지뢰밭 같다. 끔찍한 복통과 답답함, 깻잎 냄새...... 오늘 그만 살고 죽을 사람처럼 잠들고 싶다. 피하고 싶었던 사람을 피하는 과정도 힘들었다.
나를 수년 간 속인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래도 아닐 것이라고 끝까지 믿으려고 했던 어리석음의 총체인 나는 여전히 그 생각만 하면 고통스럽다. 이제 이 정도 괴로웠으면 잊어도 되는데 머리도 나쁜 게 그런 건 왜 오래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만큼 사람을 믿어본 적이 없으니 그 충격은 더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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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성과 오래 사귀어본 적이 없으니까 이성이 주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져서 이제 막 다른 세상이 열릴 것 같을 때 그 사람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 외엔 연애라고 할만한 경험도 기억도 없이 그저 누군가를 오래 두고 보며 나 혼자 정들어서 그리워하는 웃기는 짬뽕이다.
내가 끝장을 보지 못한 문제에 관해 손 놓거나 집착하거나 둘 중 한 가지인데 그 문제만은 어떤 길로든 가보지 못해서 집착한다. 남들 할 때 따라서 비슷하게는 해봤어야 했다. 이제 그러기엔 다 늙어서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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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은 자제를 잘하는데 카페인은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커피 한 번 끊어봐? 몸이 많이 아프기 전에 끊어야 진짜지. 사놓은 원두만 다 먹고 나서......(이렇게 슬쩍 발뺌하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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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남자 친구랑 톡 하느라 바쁘다. 다음 주에 어디 가서 만날지 둘이 접선 장소를 정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모양이다. 밀린 일 끝나면 다시 원룸으로 내쫓아야겠다. 사실 그러면 더 좋아하겠지. 내가 혼자 일을 망치고 혼자 앓으며 사는 게 정상치를 넘어선 수위까지 와서 일부러 불렀다. 그런데 그냥 혼자 견디고 내보내야겠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혼자 있을 때보다는 어떤 점에서든 조금 낫다. 나 혼자 살기 싫다. 그래도 그냥 보내줘야겠다. 내 안의 악마가 나를 계속 망친다. 이렇게는 살 수 없는데...... 이건 정말 너무한데...... 두려워하면서 이렇게까지 손 놓고 겁내며 굳어있기는 처음이다. 이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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