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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2월 9일

by 자 작 나 무 2021. 2. 10.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와인 한 병과 과일치즈가 든 가방을 받았다. 내내 신세만 지고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선물을 받았다. 세 사람만 함께 쓰는 오붓한 연구실에서 한철 살다와서 가까워진 사람도 그 두 분뿐이다.

 

내일모레 뭐든 차려놓고 딸이랑 둘이 저 와인을 따서 마실까 한다. 기분 좋게 받게 되는 선물이 있고, 끝내 손이 가지 않고 가지고만 있다가 버리게 되는 선물도 있다. 받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어쩔 수 없이 받은 선물이거나, 어쩐지 편하지 않은 선물은 대체로 그렇게 된다.

 

스물네 살에 처음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만난 학생에게 선물 받은 보석함이나, 돌로 만든 풍경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밖에 나갈 때 늘 가지고 다니는 스타벅스 텀블러는 친구네 사연 많은 둘째 딸이 대학에 자퇴서를 내고 제 엄마와 내내 다투고 속상해할 때 둘이 좀 떨어져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내가 호주나 캐나다로 가서 일 년쯤 지내고 오면 어떻겠냐고 권해서 호주 가서 1년 힘든 일 하다가 돌아와서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사준 귀한 선물이다.

 

내 건강 생각해서 돌아올 때 영양제를 종류대로 사준 것으로도 감사한데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내 손으로는 덜컥 사기에 비싸다는 생각에 살 생각을 못하던 것을 선물로 줬다.

친구가 사준 것도 아니고 친구 딸이 땀 흘려 번 돈으로 사준 것이어서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아껴 쓰느라 자주 쓴다. 좋은 것은 모셔두고 아끼는 게 아니라 용도에 맞게 자주 쓰는 게 아끼는 거다.

 

어떤 이의 선물은 넙죽 받고, 어떤 이의 선물은 극구 사양하다가 마지못해서 받는다. 어떤 선물은 마음도 물질도 빚진 느낌이고, 어떤 선물은 감사하는 마음에 기분 좋다. 뭔가 넙죽 받게 되는 경우엔 좋은 인연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과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꺼리고 피하게 되는 과한 인연.

 

주고받을 것이 다한 인연은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주고받을 것이 다한 인연을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

 

*

명절이 또 다가온다.

가족을 만나지도 않고, 차례를 지내지도 않고, 명절 음식을 하지도 않는 우리에게 명절은 그냥 휴일이지만, 어릴 때부터 대가족이 치르는 명절을 경험한 내게는 조금 쓸쓸한 날이다. 어떤 날은 대나무 숲에 가서 실컷 소리치고 싶다.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쏟아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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