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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통증 관리

by 자 작 나 무 2021. 2. 15.

낮에 몇 시간씩 생리통에 시달리고, 저녁엔 몇 시간씩 편두통에 시달리다가 아픈 것을 참는 것이 한계에 다다라서 결국 진통제를 먹었다. 조금 지나니까 거짓말처럼 두 가지 통증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왜 참니?

 

마음이 아픈 것도 단방에 사라지게 할 진통제가 있으면 좋겠다. 누가 상처를 낸 것도 아닌데 저 혼자 앓다가 아픈 이 마음은 임자가 나인데도 계속 괴롭게 한다. 내가 나를? 왜?

 

욕심 때문이지! 보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괴로움도 내 욕심 때문이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혼자 좋아하며 앓는 것도 내 욕심 때문이지. 시원한 진통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끝없이 질문하는 것. 왜 그 생각을 하는지 묻고 또 묻다 보면 끝에 내가 바라는 것이 나온다.

 

딸과 오래 함께 사는 것이 익숙했다가 떨어져 살면서 딸을 만나지 못하게 되니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내가 느낀 분리로 인한 외로움, 섭섭함이 병이 되어 힘들었고, 오래 목 아파서 일할 수가 없어서 어렵게 지내는 동안 내가 당연히 누렸어야 할 시간과 경력과 그로 인해 얻었을 경제적 이익과 기타 등등이 모두 사라진 과거를 딛고 지금의 현실을 살고 있어서 느끼는 현실적 괴리감. 그것이 또한 더러 나를 힘들게 한다.

 

첫 번째 괴로움은 삶의 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므로 익숙해져야 하고, 두 번째 괴로움은 어떤 과정을 겪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만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건너뛸 수밖에 없었던 것을 두고 연연해하면 계속 아프고 힘들 것이니 내 것이 아닌 것을 두고 징징거리지 말 것.

 

세 번째 괴로움은 굳이 남자를 사귀지 않아도 오래 정든 친구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잘 살아갈 미래를 만들어볼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생각지도 못한 배신으로 깨져서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괴롭다. 어차피 우정이든 애정이든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내 마음을 쏟은 세월만큼, 내가 믿은 만큼 사람이 나와 같지 않음에서 느끼는 괴리감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마음을 쏟을 상대가 필요할 때 누군가 익숙한 대상에 그 감정이 와르르 쏟아져서 혼자 감당이 안 될 지경에 이른 것이 그다음에 생긴 괴로움이다. 이것조차 욕심이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감정을 쏟아야 서럽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이런 계산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 이 집착, 욕심, 애착...... 나는 참 집착이 강한 사람인 것 같다.

 

꿈속에서라도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유체이탈하는 법이라도 익히고 싶었다. 그때 못지않게 집착하는 지금 이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 지나면..... 한참 더 지나면...... 

 

그리움이나 배신감이나 아주 생생해서 쉽게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두 가지 극과 극의 감정을 각각 다른 사람에게 느끼면서 혼자 한심하게 늙어가고 싶진 않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고 털어버려야지. 

 

*

옛날엔 그 누구에게도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살았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 머릿속은 항상 복잡했고, 많은 생각으로 전신이 피곤했다. 말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병을 얻어서 한 달 넘게 그 어린 나이에 독한 약을 처방받아서 먹고 바보가 됐다.

 

누가 안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자잘한 감정 나부랭이 털어놓는 글 써 놓은 것을 누군가 본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쏟아놓는 나는 한결 가벼워진다. 

 

단순하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체하진 않으니까. 곪고 병들진 않으니까. 순간의 감정을 옮겨놓기 때문에 때로는 넘치고 우스꽝스럽지만, 그냥 그 순간의 감정을 그림 그리듯 그려놓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하기 전에 나오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이 내가 내게 내린 처방이다. 쓰다 보면 정리가 되니까.

 

연필로 연습장에 낙서하는 그림 그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쓰고 나면 뭘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울렁거리는 것은 거의 가라앉는다. 나에겐 꽤 쓸만한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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