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맛점 하세요.'라는 인사를 내게 문자로 보냈다. 나는 그 인사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꼭 모든 대화가 진지하거나 무거울 필요는 없지만, 한없이 가볍기만 한 말이 싫다.
상습적으로 너무 뻔한 말의 맞춤법을 무한대로 틀리게 쓰거나 '맛저, 맛점 같은 줄임말을 일상 용어로 쓰는 사람이 어쩐지 불편하다.
나처럼 별것도 아닌 것에 까탈스럽게 구는 사람을 그들은 오히려 불편해할 것이다. 쌍시옷을 붙여야 할 자리에 귀찮아서 계속 그냥 시옷을 쓰는 습관이나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고 몇 글자 더 쓰는 게 번거로워서 혹은 남 하는 대로 따라가느라고 '맛점 하세요'라고 딱 세 글자 줄인 것이 얼마나 경제적일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저렴하게 느껴져서 싫다.
물냉면을 한 글자 줄여서 '물냉'이라고 한다고 그 글자 한 글자 치는 시간 아껴서 엄청 대단한 일에 쓸 모양이다. '물냉, 비냉,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쩐지 짜증 난다.
처음 그런 격렬한 거부감에 꽤 오래 치를 떨던 말이 '멘붕'이었다. 멘탈 붕괴라는 말 자체도 멘탈이라는 영어와 붕괴라는 한자어를 더해서 정말 해괴하기 짝이 없게 만든 말이어서 어이없고 싫었다. 너도나도 쓰니까 이젠 그때만큼 온몸이 감전된 것 같은 표정은 짓지 않는다. 나도 가끔 어떤 어감을 전달하기 위해 '멘붕'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그다지 쓸모있는 것 같지도 않은 글자 절약(?)의 풍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구든 내게 '맛저하세요, 맛점하세요.'라고 했다간 그 이후로 말없이 연락을 끊을지도 모른다. 그냥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
이런 글을 카페 게시판에 쓰면 까다롭다고 욕 얻어먹는다.
내가 하지 않은 말도 유도 신문하듯 자기가 내뱉어놓고 내가 어떤 말을 했다며 수업 중에 한 말을 빌미로 특정 정당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어떤 학부모가 신경 써서 교육한 학생의 말을 듣고 그 부모가 교육청에 나를 고발한 일도 있었다. 불려 가서 빨갱이 조사하듯 내 잘못을 시인하라는 듯한 그 날의 분위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불쾌하고 불편한 경험이었다.
*
약 먹어서 졸린다. 생각할 수 없는 지경이 되니 편하네. 더 길게 다른 말 쓰지 않게 되니까.
'흐르는 섬 <2020~2024> > <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가 고픈지, 속이 쓰린지 (0) | 2021.02.16 |
---|---|
2월 16일 (0) | 2021.02.16 |
2월 15일 (0) | 2021.02.15 |
통증 관리 (0) | 2021.02.15 |
2월 14일 (0) | 2021.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