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길에 사 온 국거리용 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 감바스 해 먹으려고 냉동실에 준비해 놓은 붉은 새우 몇 마리도 곁들여서 오랜만에 끓인 미역국을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내내 먹었다.
가지도 한 봉지 사서 썰어서 부치고, 초벌 부추도 한 봉지 샀다. 내가 먹기에 한 단은 너무 많아서 사기 번거로웠는데 초벌 부추는 아주 조금 담아놓고 한 단과 같은 가격에 판다. 부추만 왕창 썰어 넣고 부친 달걀부침을 내주던 오행당 골목(강구안 골목을 이곳 사람들은 오행당 골목이라 부른다)에 있는 해물뚝배기집 생각이 났다.
딸이 한창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지인과 그 집에서 가끔 해물 뚝배기나 물회를 먹었다. 딸이 조금 자라서 회 맛을 알게 된 뒤에 물회 먹으러 가끔 가던 집인데 요즘처럼 관광객도 뜸한 시절에 장사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부추를 종종 썰어서 달걀 몇 개 풀어서 동그란 팬에 부쳐서 네 등분해서 접시에 담았다. 가지전 부치고, 부추전에 넣을 채소가 당근뿐이어서 당근 채 썰고 청양고추 조금 다져 넣고 부추전도 부쳤다. 그렇게 기름에 부쳐낸 것 세 가지에 소고기와 새우를 넣은 진한 미역국을 담아서 밥 없이 혼자 저녁을 먹었다.
신기한 일은 갑자기 뭔가 떠올라서 만든 음식을 내 손으로 해 먹고 나면 묘한 안정감이 든다. 가끔 그런 착각이 든다. 손맛이 있다는 것처럼 내 손으로 만든 음식에 보이지 않는, 머리로는 단순하게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선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혼자여서 장 보러 마트에 가지도 않고, 사람 많은 곳에 일절 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마음이 앞서서 일하는 곳 외엔 아예 나가지 않게 몸에 익은 이상한 틀을 곧 깨야 한다. 몸은 점점 알 수 없는 독소가 쌓여서 쉬어도 몸 상태가 그다지 호전되지 않는 이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경험해봐서 안다.
이번 주말에는 배달음식을 먹지 않고 내 손으로 한 음식을 먹고 일요일인 오늘은 새벽에 깼다가 약 한 봉지 먹고 잠들었다. 아침에 깨서 어젯밤에 쪄놓은 고구마 몇 개 집어먹고 잠들었다가 또 낮에 깨서 뭔가 먹고 다시 잠들었다. 그간 밀린 잠을 한꺼번에 자는 사람처럼 자고 또 잤다.
오후 4시쯤 깨어서 내 몰골을 보니 눈 밑이 여전히 쑥 꺼져 보인다.
새로 시작한 1년, 처음 만난 사람 속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긴장감으로 버티는 시간이 커피 카페인으로 나를 속이며 견딘 것처럼 3주를 버틴 모양이다.
말을 거는 사람도 없고, 말할 데도 없이 혼자 3주 동안 출근, 퇴근 외엔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방 안에서만 지냈다. 이번 주엔 그게 너무 익숙하기라도 한 듯 이불과 한 몸이 되어 누웠다가 일어나기만 반복한다. 어차피 내일부터 아침마다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쉴 때도 있으면 좋은 거지.
전엔 주말에 놀러 나가지 않으면 천벌이라도 받을 것처럼 아주 미친 듯이 쏘다녔고, 그 여행 덕분에 내 삶을 지탱한 것 같았는데 이제 방구들 지고 앉아서 지난 시간만 돌아보고 있자니 정말 이렇게 늙어지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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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 친구에게 얼마 전에 엽서 한 장이 왔다. 그 친구는 여고 동창이고, 대학 동창이기도 하다. 나와 달리 전형적인 교사의 삶을 모범적으로 산 친구다. 모든 것에 정석인 것 같은 사람. 나도 그렇게 산 적이 있긴 하다만 지금 나와 그 친구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그 친구의 대학 동창 중에 같은 과 친구가 세계 여행을 곳곳에 다니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작년에 부친 엽서가 이제야 도착했다. 참 여행 많이 다니는 친구라며 그 엽서 한 장을 들고 차근차근 짧은 대화를 하던 중에 마침 그 친구는 멀미가 심해서 여행을 다니기 힘들다고 했다.
돈도 많이 벌었을 테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계획을 세워서 살 수 있는데 여행을 못 한 이유가 뭘까 생각했더니 멀미가 심해서 자기가 운전하는 차만 겨우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거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아프지만 않으면 팔도를 돌아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4월엔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버스 타고 다니자니 답답할 것 같고, 차를 사자니 얼마 타지도 못할 거면서 너무 지출이 클 것 같아서 고민이다. 예전엔 주말마다 함께 여행 다닐 친구가 있어서 이런 것은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몸만 아프지 않으면 나설 수 있었다. 이젠 체력관리도 만만치 않은 나이가 되었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에너지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함께 때때로 여행 다니던 친구도 세월 따라 뿔뿔이 인연이 흩어져서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다.
새 여행 친구를 사귀거나 새 차를 사야 한다. 아니면 시외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걷고 뜻하지 않는 곳에서 발이 묶이면 혼자 숙박하고 여행을 즐기기엔 어쩐지 부담이 크다. 20대 중반에 혼자 여행 다닐 때도 그렇게 잘 다녔는데 나이 먹으니 겁이 더 많아졌다. 그땐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도 곧잘 했는데 오히려 나이 먹고선 가리는 게 많아진 것 같다. 두려움과 편견, 선입견이 많아져서 그럴 것이다.
mukti라는 단어를 어쩌다 좋아서 갖다 쓰다가 부담스러워서 이후에 주로 쓰는 단어를 vasana로 바꾼 뒤에 나는 대체로 그 말처럼 훈습에 발이 매여 그물망 속에서 허덕이는 것 같은 상황에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모습도 생각도 흘러가는 대로 살기를 바란다. 쓸데없는 고집은 버려도 좋다.
지난주에 새로 산 와인잔이 가격 대비 괜찮아서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