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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프랑스 <2006>

고흐와의 만남

by 자 작 나 무 2010. 8. 13.

2006년 8월 3일 목요일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

 

 

 

 

파리에 도착한 첫날은 오후 늦게 입장 가능한 코스를 선택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인 일요일 첫 코스로 곧장 오르쉐 미술관에 갔다. 눈여겨보았던 고흐의 그림에 유난히 마음이 끌려 기념품으로 그의 그림이 담긴 그림엽서를 샀다. 

 

 

 

 

여행 코스에 그가 자살하기 전의 마지막 생을 살았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갈 예정이었지만, 거기에서 내가 무얼 보고 어떤 것을 느끼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초등생 시절, 매달 보던 잡지에서 오려서 모으던 세계의 명화들을 실물로 보게 된 것만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살던 곳에 찾아가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파리에서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작은 마을. 그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던 정신과 의사 가셰 박사 덕분에 그는 프로방스에 있던 정신병원을 떠나 이 마을에 머무를 수 있었다. 약 70일간 70점이나 되는 작품을 완성시켰던 곳......  

 

 

 

 

 

 

기차를 타고 오진 않았지만 우선 그 작고 초라한 역에 서서 아주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의 흔적과 느낌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기차역 맞은 편 길에 위치한 작은 공원 안에는 조각가 쟈킹이 제작한 반 고흐 상이 있다. 공원 바로 옆에 반 고흐가 70여 일간 머물렀던 반 고흐의 집이 있다. 

 

 

 

 

 

철문 안 왼쪽 편에 보이는 집 2층에 그가 살던 작은 방이 있다. 입장료 5 유로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 안내를 받아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좁디 좁은 3층 다락방에 그가 머물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 나오던 파란벽에 침대가 놓여진 작은 방, 그 방보다 훨씬 좁아보였다. 여기서 그가 70일간 그림을 그렸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실내에서 사진 촬영 금지였다. 몰래 한 컷을 찍어왔다. 그 방에 들어서자 이상한 느낌들이 몰려오고 가슴이 움찔거렸다. 코끝에 찡하게 와닿는 이상한 느낌들을 삼키고 2층으로 다시 내려가니 작은 방에서 그의 일화가 담긴 영상을 보여주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울컥 울컥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미치게 만들었을까? 70일간 70점의 작품을 남기고 (자살이 아니라 권총 오발사고로 총을 맞았다 한다.) 괴로워하다 생을 마감했다 한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던 미묘한 느낌과 겨우 서른 여덟에 생을 마감한 한 사내의 인생에 대한 아픔이 왜 그 자리에 선 내게도 그토록 아프게 느껴졌는지...... 옆자리에 앉았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그 방을 나왔다. 

 

 

 

 

 

 

 

 

그의 그림 속에 나오는 저 길목 오른쪽으로 가면 교회가 보인다.

 

 

 

 

 

 

 

 

 

교회를 지나 약간 언덕진 길을 걸어 올라 그의 유해를 만나러 갔다. 그의 그림 속의 푸른빛처럼 알 수 없는 꿈틀거림이 가는 걸음 내내 일렁였다.  

 

 

 

비가 살짝 비쳤다 개기를 반복했다. 무덤으로 가는 길엔 갖가지 고운 빛깔 꽃들이 밀밭 너머로 옹기 종기 모여 피어 있었다.  

 

 

 

그의 무덤이 있는 오베르의 공동 묘지. 

 

 

 

 

초라하기 그지 없는 그의 묘비 옆에 나란히 그가 숨을 거둔(1890년) 다음 해 숨을 거둔, 그의 동생 테오의 묘비가 있었다. 그를 평생 후원해 준 동생......  고흐가 서른 여덟에 짧은 생을 마감한 후 그보다 젊었을 동생 테오는 왜 그렇게 빨리 숨을 거두었을까?

 

 

내게도 몇해 동안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불 같이 더운 여름 날씨를 견디며 조선소에 다니며 번 돈으로 그 당시 몸과 마음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내 목숨을 연명하도록 도와줬던 유일한 핏줄. 늘 미안하고 덤으로 사는 인생처럼 느껴져 목에 뭔가 하나 걸린 듯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나는 과연 동생에게 언니로서 조금이라도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것일까? 

 

이 여행 조차도 누군가의 후원으로 가게 된 걸음이라 가기 전부터 몇번씩 망설이고 마음이 무거웠던 생각부터 떠올랐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생을 지켜주기 위해 한 순간이라도 후원해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릴 때 읽었던 위인 전기에 실렸던 고흐의 이야기는 한 대목도 생각나지 않았다. 뭔지 다른 작가들의 그림과는 다른 붓놀림만이 강렬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왜 나는 그의 무덤에 오늘 서 있는 것인지, 내 나이 서른 일곱에 그의 마지막 생의 장소를 되짚으며 서른 여덟에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유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있을 때 자신의 그림을 전시할 기회 한번 변변이 가져보지 못한 그의 묘비 앞에서 나는 어쩐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가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열정과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그림들을 더 그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의 무덤이 있는 공동 묘지를 걸어나오며 추수한 밀밭을 가로질러 걸어내려왔다.

 

"산다는 것이 그냥 이런 것이야...... 사는 게 뭔지...... 조금만 더 오래 버텨볼 것이지......"

 

길 모퉁이 너머로 보이는 교회의 첨탑을 바라보며 절로 한숨이 나왔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인생이 어디 그 하나뿐이랴만......  

 

 

 

 

 

 

 

수일 내로 나는 오르쉐 미술관에서 사 온 그의 그림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둘 것이다. 어릴적부터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묘한 느낌으로 끌렸던 그의 그림을 보며 내 방의 푸른 벽 안에서 한 인간의 고뇌와 좌절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떠났던 여행은 어릴적 그의 그림과의 첫 만남 이후 또다른 인연을 예고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Minor Blue - David Dar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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