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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4월 9일

by 자 작 나 무 2021. 4. 9.

개교기념일 = 휴업일

오늘은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바다 건너 가면 당분간 무조건 해외여행이다. 바다 건너 비행기 타고 가는 방법도 있지만 배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 동네에 흔한 섬 여행을 즐겨보기로 했다. 우선 여유 있는 평일 여행 첫 코스로 소매물도를 골랐다. 하루 세 번 운항하는 배가 마침 10시 50분에 출항하고, 배가 섬에 닿을 무렵에 마침 물때가 맞아서 등대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날이다.

 

물때까지 맞아서 기분 좋게 식사 대용으로 달걀 삶은 것 4개, 커피 한 통, 물 두 통, 딸기 씻어서 꼭지 딴 것 한 통까지 야무지게 싸서 나갔다. 차 타면 10분이면 가는 여객선 터미널에 얼마나 오랜만에 갔던지 공사 중인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임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표 끊으려니 매표소 직원이

"오늘 오후에 바람 많이 불어서 섬에 들어가면 나오는 배는 없어요. 무조건 하룻밤 섬에 있어야 해요."

오랜만에 디카 배터리 충전도 빵빵하게 해서 들고 나왔는데 바닷가에 바람이 심해서 배가 못 다닐 정도가 된다는 게 어떤 상황인지 바닷가에 오래 살아서 잘 안다.

 

나서선 안 될 날이다. 곧장 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들고 나갔던 커피를 한 잔 따르고, 딸기를 꺼내서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그리곤 어지간해선 만나기 힘든 딸에게 혹시나 아무 데도 못 가면 찾아갈 수도 있다고 어제 미리 이야기했지만, 오늘 정말 가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나날이 살이 계속 쪄서 새로 산 옷조차도 몇 개 되지 않지만 그게 겨우 들어가고 우스꽝스러울 지경이다. 그래서 매일 출근할 때 뭔가 입고 나가야 하니까 옷을 새로 사기로 했다. 매번 온라인에서 할인율 높은 것 중에서 고르다 보니 마땅한 게 없어서 옷을 사기가 쉽지 않았다.

 

백화점 할인 코너를 비롯해서 캐주얼 여성복 코너를 돌다가 결국 아주 구석진 할인 코너에서 내 몸에 들어가는 원피스를 골랐다. 어쩐지 싸다고 생각하고 골라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속치마 없이 홑겹으로 만든 옷이어서 가격이 싼 것이었다. 어쨌거나 딸이 옆에서 봐줘서 옷도 고르고 같이 점심도 먹었다.

 

평일 낮시간인 데다 코로나 19 환자가 급격하게 늘어서 매장이나 식당에 다행히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점심 먹으면서 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엄마, 우린 맛있는 거 먹으면 '음~~ 맛있어~'라든가 뭔가 추임새가 절로 나오니까 표현하잖아. 근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그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서도 아무 반응이 없어. 그래서 내가 맛있냐고 물어보니까 맛있대. 근데 왜 다 벌서는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지 모르겠어."

 

언젠가 대게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해서 기장 시장에 있는 대게집에 가서 게를 먹을 때도 그랬다. 우린 한 번 먹기 힘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어서 신나기도 하고 맛있으니까 좋아서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먹었다. 같은 식당에서 대게를 먹던 어떤 가족은 싸우고 나온 사람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말 한마디 없이 음식을 먹었다.

 

그날 밖에 나와서 딸이 또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감정 표현을 너무 안 하고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하면서 즐길 줄을 모르고 그렇게 무덤덤한 것이 이상하단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서 내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몰랐다.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것을 느끼며 사는데 이왕에 기분이 좋으면 말이든 표정이든 표현하면 보는 사람도 기분 좋아질 것 같은데 그게 참 어려운 모양이다. 내가 감정 표현을 워낙 많이 하니까 그걸 보고 자란 딸이 밖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고 무척 어색했나 보다.

 

 

나도 마찬가지. 급식소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다들 로봇 같은 표정으로 밥을 먹고, 사무실에서도 최대한 농담과 웃음을 아끼는 근엄함이 감정을 시도 때도 없이 추임새 넣어서 발사하는 나를 더 눈에 띄게 한다. 수업할 때는 또 얼마나 호들갑스러운가.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다.

 

조금만 달라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런데 그 다름이 나쁘지 않은지 요즘은 내 수업 듣는 학생 중에 유난히 깍듯하게 내게 인사하는 학생이 늘었다. 이제 한 달 지났다. 그간 힘들고 때론 주눅 들고, 때론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속상하고 답답했던 시간이 제자리를 잡는다.

 

여태 본 중에 가장 뱃살이 많이 쪄서 걱정 된다고 살 좀 빼라는 딸의 말을 새겨듣기로 했다. 그런데 얼굴엔 살이 포동포동 쪄서 오히려 나이 덜 들어 보인다고 신기하다며 씩 웃어준다. 오랜만에 딸 만나서 밥 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와서 기분이 한껏 말랑말랑해졌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앞으로도 외로워서 방전된 인생의 배터리를 이렇게 가끔 충전하는 일 외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외로운 날이 지속될 것을 인정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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