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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by 자 작 나 무 2021. 6. 19.

오늘 연화도 수국 길 걸으러 갈 계획이었는데, 딸 눈치를 보니 밖에 나가기 싫은 모양이다. 아예 정오가 넘도록 잔다. 나도 딱히 나갈 의지가 생기지 않아서 내내 누워서 빈둥거렸다.

 

월요일까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오늘 종일 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에 어쩌다 둘이 앉아서 새 시트콤을 보기 시작했다. 시트콤 제목이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5편까지 보고 나니까 시트콤 제목이 왜 그런지 나온다. 국제 대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리는 대학생인 주인공의 집안 형편과 가족에 얽힌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여자 주인공인 대학생이 그런 심정으로 살았다고 고백한다.

 

감정이 얽히기 시작하여 설레고 기대하는 자신의 현실을 어느 순간 마주하면서 정신이 들었다며 주인공에게 가까이 다가선 남자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드라마를 함께 보던 딸이 말한다.

딸 : 저런 상황이면 아무도 못 만나겠네.......

나 : 그래. 저런 상황이면 힘들겠지. 우리 집엔 빚도 없고, 범죄자도 없고 너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할 사람도 없으니 홀가분하니 좋지?

 

깔깔거리며 다섯 편을 연이어 보다가 그 장면을 보고 난 뒤에 잠시 화면을 껐다. 이제 나도 현실로 돌아와서 밀린 일부터 하고 더 놀아야겠다.

 

 

*

난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만 사라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없어도 해는 뜨고 지구는 돌아가니까. 내 역할이 감당하기 벅차서 그런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얽힌 인연은 한 올 한 올 풀고 나오기 쉽지 않다.

 

그 끈을 다 풀어내고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10대에 출가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수련장에 온 것이나 다름없다. 꼭 어딘가에 속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길은 어디에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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