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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채소튀김

by 자 작 나 무 2021. 6. 23.

어깨와 등이 무겁다. 새벽에 깨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뒤 다시 잠드는 신공이라도 닦으려고 이러나 싶다. 가보지 못한 길을 지난다. 때가 되었다. 힘들지만 견딜만하다.

 

얼만 전에 만난 딸 친구 엄마는 견디기 힘들어서 약을 먹는다고 했다. 무슨 약인지 먹으면 견디기 수월해진다면, 혹은 약을 먹어야만 하는 일이라면 지금처럼 견디기만 하는 것은 무지한 탓이다.

 

산청에서 만난 남 선생님이 곁에 계셨다면 이런 이야기 묻고 다양한 답도 청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박식하고 다정하고 친절하셨던 남 선생님이 그립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힘들었던 그곳에서 나를 위해 종종 맛있는 반찬을 싸 들고 와서 안겨주곤 하시던, 그 계절을 덕분에 무사히 잘 지나왔다.

 

남 선생님께서 이른 아침에 깨서 부쳐서 가져오셨던 감자, 연근, 깻잎 등 각종 채소전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서 느껴졌던 담백하고 고소한 단맛이 그립다. 남 선생님 부군께서 지키고 계신다는 지리산 자락의 게스트하우스에 이틀 정도 지내면서 남 선생님께서 만들어주시는 맛있는 아침을 먹고 싶다.

 

*

에너지 고갈, 탈진, 번아웃 같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상태였다.

퇴근 가능한 시각에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 집에 와서 연근, 꽈리고추, 가지, 장어를 튀겼다. 튀김 덮밥을 먹고 싶다는 딸의 요청이 있기도 했고, 나도 마침 남 선생님께서 가끔 부쳐서 가져다주시던 연근 전 생각이 났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쉬면 이상하게 뭔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오늘도 그랬다. 채소튀김을 애플 사이다 곁들여서  맛있게 먹고 노래 몇 곡을 연거푸 들었다. 헤이즈의 매력적인 음색이 중독성 있는 '헤픈 우연'에 꽂혀서 수십 번 듣고 또 들었다.

 

오늘 거울 너머에 있는 나는 며칠 사이 딸과 함께 저녁을 많이 먹어서 퉁퉁 부은 얼굴이 변형되어 그대로 자리 잡은 것이 영 흉하다. 이런 모습이 고착화하는 게 싫은 이유를 이야기했다. 딸도 내가 느끼는 불편한 심사에 공감해준다.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는 동안 나를 위해서라도 밤참은 먹지 않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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