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20~2024>/<2021>

10월 10일

by 자 작 나 무 2021. 10. 11.

아직 시험 기간이어서 연휴에도 바쁘다는 딸을 만나러 다녀왔다. 밥 한 끼 같이 먹는 약속 잡기도 쉽지 않다. 작년 가을에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외버스 내리는 곳에서 만나자마자 참새처럼 조잘대더니 음식점으로 이동하는 택시에서, 음식점에서도 끊임없이 말한다. 그간 부쩍 가까워진 같은 과 친구와 나눈 대화 속에서 재조명하게 된 우리 관계가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그렇게 한다.

 

너무 당연한 것처럼 받았던, 누렸던 우리 삶이 다른 친구들이 산 일상과 질적으로 달랐던 것이 큰 복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단다.

 

같이 맛있는 것 먹는 게 너무 좋다며 내가 추천한 식당에서 내가 추천한 메뉴를 먹으면서 기분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 친구들이 엄마가 늙어가는 게 마음 아프다는 말을 했다는데 나는 늙어가는 것 같지 않아서 괜찮다며 살만 좀 빼라는 말을 덧붙인다.

 

 

 

너무 맛있게 잘 먹어서 다음에 여기 또 오기로 했다. 반찬 한 가지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정도로 반찬까지 맛있었던 '더 하우스 갑을' 옛날에 갑을가든이었을 때도 데려와서 가끔 밥을 사 먹였는데 그때와 입맛이 달라져서 오래된 이 집이 참 마음에 든다며 좋아한다.

 

점심 맛있게 먹고 백화점 들러서 딸내미 스커트, 조끼, 속옷 세트 등을 사고 내 원피스 하나, 조끼, 목걸이를 샀다. 다음엔 꼭 시간 내서 아웃렛 가서 쇼핑하자는 덧붙임을 잊지 않고. 오후 늦게 과 동기들과 약속 있다고 먼저 딸이 떠나고 난 진주 골목 어딘가에 있는 카페 바깥 자리에 혼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고 통영으로 돌아왔다.

 

전에 아껴 쓰던 목걸이에 비해 알이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도 내가 나를 위해 얼마 만에 산 액세서리인가. 얼떨결에 사서 가격 생각 않고 샀다. 딸이 골라준 게 참 예쁘다. 뭔가 함께 한다는 것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그런 거다. 딸과 함께 하는 시간......

 

일기 쓰면서 목걸이를 만지다가 눈물이 핑 돈다.

백화점에서 돌아다닌 뒤에 쉬고 싶어서 혼자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다가 목걸이가 괜찮은지 보려고 사진 한 장 찍었는데 알이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는다. 저걸 내가 왜 샀을까 생각해보니 백화점에서 스와로브스키 매장을 지나는데 딸이 전에 내가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 이야기를 꺼냈다. 하나 걸면 덜 허전해 보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신경 쓰여서 얼떨결에 샀다.

 

딸 눈에 내가 늙어 보이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스트리아 스와로브스키 본사 앞에 있던 전시장에 갔던 이야기가 나왔고, 그때 봤던 예쁜 물건보다 함께 거기 갔던 기억이 더 빛나는 추억이었다는 것이 내게 위안이 됐다. 함께 여행한 추억은 언제든 꺼내서 다시 머금어볼 수 있는 맛있는 이야깃거리다.

 

함께한 여행의 추억이 많아서 행복하다.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고, 또 여행 가고 싶다. 음식점에서 딸이 내내 조잘거리던 이야기가 결국 저를 행복하게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잔소리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고, 항상 집에서 맛있는 간식 만들어 놓고 저를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며 눈을 반짝이던 순간, 내가 참 열심히 잘 살았구나 싶었다.

 

내가 엄마 역할을 참 잘했다. 이번 생에 딸 하나만 낳아서 저에게만 엄마 역할을 한 것이어서 나에겐 유일한 경험이었다.

 

어제 백화점에서 저가 손에 잡는 옷, 눈이 가는 옷을 골라서 사주면서 이 또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백화점에서 헤어지는 순간에 몇 번씩 껴안았다. 남이 보는 데서는 안지 말라던 딸이 좀 커서 달라진 게 사람들이 보는 데서도 막 껴안는다는 거다.

 

혼자 깨어있는 아침, 어제 그 시간을 생각하니 자꾸 눈물 난다. 잘 살았고 기분 좋고 행복한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악~ 나는 갱년기?

'흐르는 섬 <2020~2024> > <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 24일  (0) 2021.10.24
어쩌다 서울  (0) 2021.10.18
10월 9일  (0) 2021.10.11
10월 4일  (0) 2021.10.11
새 안경  (0) 2021.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