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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1>

어쩌다 서울

by 자 작 나 무 2021. 10. 18.

지난 금요일 오후에 일과가 비어서 영주에 가보기로 했다. 연이어 2주 경주에 들락거리다 보니 이제 그 너머 내륙에 가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20대 중반에 혼자 안동 봉정사도 갔다가 영주 부석사에도 어떻게 찾아다녔는데 대중교통 여건이 더 좋아진 요즘은 왜 못 가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이유는 없어. 그냥~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환승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앞으론 한동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버스와 기차를 두어 차례 환승한 기차역에 내렸을 때 부슬비가 내렸다. 추워질 것을 예상하여 옷을 꽤 많이 입고 나간 덕분에 춥지는 않았지만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의외로 금세 지루해졌다.

 

내가 만든 금기나 우상을 깨는 일종의 의식 같은 긴 여정은 해외여행 가는 것 못지않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얼떨결에 불국사는 다녀왔는데 부석사는 영주 시내에선 꽤 멀었다. 날도 흐리고 다시 돌아갈 길도 아득해서 걸음을 서울로 옮겼다.

 

작년 가을에 가서 묵었던 언니네에서 지인에게 선물 받은 타르트를 안주로 와인 한 병을 비웠다.

 

와인 한 잔이 한 병이 되면서 언니에게서 예전엔 기대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 2시 반에 눈이 붙을 것 같아서 자리를 물렸다.

 

늦게 깨어 부스스한 꼴로 언니가 내려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전날 친구가 아침에 먹으라고 건네준 빵을 데워서 함께 먹었다.

 

어쩌다보니 그날의 유일한 식사로 먹은 빵 반 조각. 나를 언제든 반겨주겠다던 약속을 1년이 지나도 어제처럼 느껴지도록 포근하게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근처 올림픽공원에 가서 조금 걷다보니 서울의 하늘이 이렇게 맑은 것이 신기했다.

 

 

내내 길 위에서 헤매다가 일찍 돌아오려고 예매했던 비행기표를 취소했고, 얼떨결에 예매한 버스표가 서울-통영이 아니라 통영-서울 표였다는 사실을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타기 10분 전에 발견했다.

 

두 번 취소하고 결국 나는 그 시각에 가장 빨리 탈 수 있는 버스표를 샀다. 프리미엄 버스는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올 수 있어서 상당히 편했다. 너무 쉽게 3주 연이어 하루도 쉬지 않고 주말마다 돌아다녔다.

 

외로움에 사무쳐서 우울해질까 봐..... 대체 휴일까지 연휴가 2주 연속이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3주째도 마침 금요일에 오전 근무로 끝나는 희한한 조합이 나를 서울까지 가게 했다. 약속도 없이 그냥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훌쩍 떠났다 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주말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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