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그렇게 빡빡한 일정이 있음에도 어쩐지 허전했다. 주식을 다 팔고 나서 뭔가 기다려지는 게 없다는 것이 맥 빠지는 기분이랄까. 어림도 없는 종목을 샀다가 금세 되팔았다. 본전도 못 건졌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뭔가 이 구멍을 메워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변수가 생겼다.
다시 땅에 콩 심듯 뭔가 사놓고 또 기다린다. 이상하다. 갑자기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엔돌핀이 생긴다. 마약 같다. 어떤 것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무풍지대에 억지 바람이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환기되는 기분이다.
며칠 전에 아주 약간의 돈을 벌어서 엊그제 온라인으로 내게 필요한데도 조금씩 사기를 미뤘던 물건을 샀더니 오늘 퇴근길 문 앞에서 나를 반겨준 것은 쌓인 택배 상자였다. 오랜만에 동네 마트에 들러서 싱싱해 보이는 생새우도 한 팩 사고, 봉지에 담긴 생굴도 샀다.
두부 으깨어서 넣고, 달걀 하나 깨고 대파, 부추, 당근 넣고 굴전 반죽해서 부쳤더니 다른 것 부치는 동안 서서 한 접시를 그냥 비우게 된다.
지나간 이야기만 쓴다. 사람에 관해서는 잘 담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읽는 사람이 오해하기 좋은 게 내 일기다. 있었던 순서대로 뭔가 쓰는 것만은 아니니까. 내가 쓰고 싶은 것만, 생각나는 것만, 오늘 내 기분의 환기구에 막힌 것을 하나씩 꺼내다가 순간 흩어지면 대충 풀어놓다가 놓아버리기도 한다.
월말엔 잡무가 밀리고 또 밀려서 늘 책상이 엉망이다.
대체 휴일로 빛나던 시월의 다섯 번째 금요일이다. 퇴근하고 다리를 건너와서 저 너머 세상을 바라본다.
저 건너 세상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지금은 건너편으로 넘어왔다. 미륵도, 용화 세계라는 말이 이 동네에 붙은 이름이다. 신기하게도......
조용하고 아름답다.
오늘 굴이 싸게 나왔고, 싱싱해서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아서 맛있게 먹었다. 이제 딸 생각하지 않고도 혼자 먹고 싶은 식자재 사서 해 먹기도 한다. 점점 익숙해지겠지.
내일은 국제 트라이애슬론 경기 때문에 근처 도로를 통제한다는 문구를 걸어오다가 읽었다. 그냥 지나쳤으면 내일 난감할지도 모르는데 적당한 순간에 발견해서 다행이다. 오늘 푹 자고 내일 움직일만하면 어디든 나갔다 와야겠다. 딸내미가 궁녀복 입고한다는 아르바이트가 어떤 것인지 찾아가서 사진도 한 장 남겨줘야겠다.
학교 헬스장에 다니며 운동하겠다기에 이용권을 결재해줬다. 잘 먹고 배가 나와서 흉하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 나더러 배 나왔다고 흉보기만 해 봐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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