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말에 몇 번이나 물이 얼어서 나오지 않는 문제를 겪고 나서 집주인은 수도관 공사를 다시 했다. 이젠 추워도 물 나오지 않는 일은 없겠지만 이 집에 너무 오래 살았다. 그래도 익숙한 것에 적응해서 그런 문제나 생겨야 이사할 생각을 하게 된다.
2.
며칠 밖으로 떠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뭐든 하려고 마음먹고 움직여야 변화가 생기는 거다.
불안정한 사람을 만나면 내가 좀 더 넉넉해져서 품을 넓혀 품어줘야 할 것 같고, 안정된 사람을 만나면 내 비뚤어진 옷자락을 다듬게 된다.
올해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매우 급하게 마감해야 할 일에 쫓기며 연말을 넘겼다. 그리고 일에 치여서 일그러진 얼굴로 어디든 도망치듯 가방 싸 들고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잠시 봄날 꿈같은 환영을 마주하고 돌아왔다.
정말 오랜만에 뭔가에 사로잡힌다는 느낌에 젖어본다.
시선을 끄는 것이 마음을 사로잡고,
돌아서도 떠오르는 잔상
3.
그린델발트.... 그리고 어디더라......
딸이 어제 전화해서 유럽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한참 했다. 겨울에 가면 해가 빨리 지고 일기가 고르지 못해서 생각한 것처럼 즐겁지 않을 거라는 말로 달랬다. 여행 사진 보고 뭔가 동한 모양이다.
여행 기념사진을 예쁘게 남길 만큼 둘이 날씬하게 살 빼고 가자고 약속했다. 여행자금 모아 두고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건강관리 잘하며 기다려야겠다. 예쁜 생활 한복 한 벌씩 사서 여행지 랜드마크에서 기념사진 남기며 함께 여행할 생각에 꿈에 부푼다.
코로나 19만 아니면 올겨울에도 어디든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으로 제주도라도 같이 가자고 했다가 바로 거절당했다. 제주도는 유럽이 아니란다. 둘이 여행 이야기할 때 분위기가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생각하면 그동안 열심히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 보람이 느껴진다. 행복하다.
*
딸이 가고 싶어하는 동네, 2013년 8월 산 위에 바람 많이 불면 금세 일기가 나빠져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여름에도 이러한데 겨울에 어떻게 여길 가니? 내가 그날 억울하게 남긴 몇 장의 사진.
이게 아이거 북벽인지 뭔지 어떻게 알아보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