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터진 전후 3년 이상 거의 가지 않던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2000년 초반부터 단골손님처럼 찾아가던 병원에서 너무 낫지도 않는 약 말고 다른 약 좀 지어달라고 부탁하던 그곳, 이제 병원 안 와도 되고 기침도 그만해도 된다고 나에게 말해주던 그 의사 선생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코도 헐고 귀도 헐어서 낫지 않은지 며칠이 지났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코, 목, 귀가 동시에 탈이 났다. 다른 데 이사한다고 인사를 했더니 약을 더 많이 지어주셨다. 그 동네도 병원은 있지만 새로 이사한 동네 병원까지 알고 싶지 않다.
단골(?) 병원 두 곳에 가서 인사도 드리고 약 처방전도 받아왔다.
내일 날 밝는 대로 그 동네 가서 이사할 방을 정하고, 집에 돌아와서 가져갈 짐 정리도 해야 하니 꽤 할 일이 많다. 몸이 피곤할 때는 그냥 느릿느릿 몸이 움직여지는 대로만 따라야겠다.
피곤해서 감정에 치이는 순간도 있었고, 그 바람에 감정적인 말을 막 쏟아놓는다. 호르몬 때문에 아직도 이런 곤혹스러운 순간에 종종 부딪힌다.
나는 여전히 호르몬 덩.어.리.
*
내가 혼자 하기 어려워하는 일을 누군가 나서서 도와주는 순간, 누군가 나를 위해 생각지도 못한 뭔가를 챙겨주는 순간
그 순간과 순간이 모이니까 어느 순간 눈물이 흘렀다. 여태 내가 기대하지 않고 살았던, 누려보지 못한 소소한 것을 받고 여태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하는 서글픈 마음과 그 순간 감사하고 행복한 감정이 섞여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렀다.
*
제주도 친구랑 통화하다가 며칠 맛있게 먹은 안동 식혜 이야기를 했다. 식혜 먹다가 눈물 나서 울었다고 했더니 나를 조금 이해하는 친구는 내가 순수해서 그렇다고 말해준다. 식혜 사진을 보내고 그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나서 울먹였다.
그게 뭐라고 몇 번이나 울고 또 울만큼 감동적이었을까. 너무 고립된 삶을 살고, 주고받는 것 없이 외부와 나를 단절하고 살았다는 증거다.
부모님 드리려고 안동 식혜를 사러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나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네댓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곳에서 안동 식혜를 사서 가져왔다. 직접 볶은 원두도 몇 봉지 담아서 건네줬다.
오늘 땅콩이 떨어져서 식혜에 곁들일 땅콩을 새로 사러 나가는 길에 병원에도 들렀다.
아무것도 준 것 없이 뭔가 받으면 부담스러워서 손이 나가지 않는데 이번엔 무슨 일인지 넙죽 받아서 저 많은 식혜를 혼자 다 먹었다.
자주 재워주는 서울 언니네에 갈 때도 흔한 이 지역 맛집에서 먹을 만한 군것질거리 한 번 사는 일이 없다. 들고 가는 게 번거롭고 가는 길에 쉬거나 맛이 변질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할까 하여 선뜻 꿀빵이나 충무김밥 같은 것을 살 수가 없다.
장거리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팥이 쉬거나 섞박지가 쉬면 성가시기만 할 거라는 계산에 대중교통을 환승하며 다니는 내게 다른 짐 한 가지는 부담스럽다. 나도 차를 사면 마음 가는 대로 쉽게 그런 선물을 준비할 수 있을까?
시한폭탄 같아진 몸에 호르몬 과다로 감정 과잉 상태. 더 부끄럽지 않게 입을 닫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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